[Economist] 구글은 다모어에게 어떤 답장을 보냈어야 했는가

래리 페이지가 제임스 다모어에게 보냈어야 했던 답장

원문: The e-mail Larry Page should have written to James Damore (Economist)

 

지난 주 <이코노미스트>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 CEO가 구글 사내에서 공유돼 빠르게 퍼져나간 반다양성 메모에 대해 “자세하고도 울림이 있는 반박”을 썼어야 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염두에 두었던 적절한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 2017년 8월 15일 15:15 (1초 후 도착)

보낸사람: 래리 페이지 <*********@google.com>

받는사람: 제임스 다모어 <***********@hotmail.com>

참조(cc): 구글 전 직원 <all-staff-worldwide@google.com>

제목: Re: “구글의 이데올로기적 반향실”

 

제임스에게,

 

아마 제가 여성과 남성은 평균적으로 능력, 성향, 관심사에 전혀 차이가 없다는 말로 이 편지를 시작할 거라고 예상하셨을 겁니다. 아니면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남성이 여성보다 네 배 많다는 사실이 차별의 증거라며 말문을 떼던가요. 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연구들이 평균적인 여성과 평균적인 남성 사이에 수십여 개의 차이가 있다고 뒷받침합니다. 순전히 논리로만 보자면 우리 회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남녀 비율이 그 자체로선 여성혐오나 성차별의 증거가 아니라는 당신의 주장이 맞습니다.

당신이 젠더 다양성과 공정성을 지지한다고 명시하신 것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당신의 글은 “나는 다양성과 포용을 중시하며,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는 것도 아니며, 성이나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에 찬성하지도 않는다”로 시작하니까요.

제임스 다모어의 트위터 계정(@Fired4Truth)의 프로필 사진

그러니 제임스 당신과 이 편지를 읽는 다른 직원들은 이게 대체 무슨 문제인지 이해가 안갈 수도 있을 겁니다. 대체 왜 이 글이 그렇게 빨리 퍼졌을까, 왜 이걸로 그렇게 난리들일까, 왜 해고를 했을까 궁금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여러 인터뷰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칼럼을 통해 그건 구글이 “이념에 의해 움직이며 과학적 논의를 용인하지 못하는” 회사라 당신의 “합리적이고 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실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실 때문에 해고됨(@Fired4Truth)’이라는 트위터 계정과 ‘굴라그(역주 – 구글의 철자를 뒤바꿔 소련 강제 수용소를 연상케 한 것)’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프로필 사진은 당신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하는 듯 하군요.

당신은 틀렸습니다. 당신의 글은 자신이 믿는 바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다니는 ‘귀인 편향(motivated reasoning)’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속한 IT 산업을 비롯해 모든 분야의 여성들에게 모욕적인 글입니다. 말로는 다양성과 공정성을 지지한다고 해놓고는 엄청난 편견을 내비칩니다. 당신의 추론 단계는 빠진 고리가 너무 많아서 무슨 자료를 바탕으로 하건 상관이 없을 정도입니다. 구글은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과 관계 없이 진실을 쫓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려 합니다. 당신의 경우 우리가 잘못 채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왕좌의 게임> 중 존 스노우의 대사 ” ‘하지만’ 앞에 나오는 모든 말은 똥덩어리야.”

혹시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는 걸 느끼신 적 없나요? 왜 그런지 <왕좌의 게임> 존 스노우의 말을 빌려보도록 하지요. 7 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산사 스타크가 존 스노우에게 “그들은 오빠를 존경해, 정말이야. 하지만…”이라고 말하자, 스노우는 웃어넘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 ‘하지만’ 앞에 나오는 모든 말은 똥덩어리야.”

당신의 글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그 대사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편견과 기술, 직장을 경험하며, 우리는 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모든 걸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평균적인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성과 공정성을 존중한다는 당신의 말은 모두 저 엄청난 “하지만” 앞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당신은 남성과 여성의 몇 가지 차이를 묘사하고, 그게 대다수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남성인 이유라고 주장하며, 성비를 변화시키려는 구글의 노력이 여성에 대한 공정함 아니라 반남성적인 편견이라고 불평합니다. 당신은 ‘차별한다(discriminate)’와 ‘차별(discrimination)’이라는 단어를 이 글에서 17번 사용하는데, 모두 남성이 피해자라는 맥락에서 사용합니다.

다모어가 주장하는 정규 분포 도형 – 평균은 비슷하지만 극단은 한쪽 집단의 인원이 더 많다.

당신의 글이 실제로 무슨 내용인지를 밝혔으니 이젠 그 주장을 검토해보도록 하죠. 당신이 인용하는 남녀의 주된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사람들에게 관심이 더 많고, 사물에는 관심이 덜하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체계화”보다 “공감”에 능하고,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 남에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불안 수준이 높고 스트레스 내성이 낮다. 당신의 주장은 남녀 두 집단은 평균만 살짝 다를 뿐 거의 동일한 두 개의 정규 분포 도형을 그리지만, 정규 분포 끝부분에 위치한 ‘아웃라이어’들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 팀에서 친절하게 절 위해 더 평균이 높은 분포 ‘꼬리’ 부분을 강조한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이 단순화된 모형을 보면 특정 변수에 대해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을 모두 모으면 그 중엔 평균이 더 높은 집단에 속한 인원이 훨씬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 체계화 능력 대비 공감능력에서 남녀가 집단적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 다음, 이와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 남성과 여성의 프로그래밍 능력 차이로 건너뜁니다. 딱 꼬집어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여겨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추론에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 주장의 첫 번째 오류입니다. 제 눈에는 오류가 적어도 여섯 개는 더 보입니다. 각각 단독으로 있어도 당신 주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오류들입니다.

첫 번째로, 당신은 결론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이는 소수의 남녀 차이를 바탕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많은 남녀 차이를 무시합니다. 두 번째로 당신은 남녀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원인들을 무시합니다. 세 번째로 당신이 인용하는 남녀 차이는 국가별, 시기별로 달라집니다. 네 번째로 그 차이가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구성요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요. 다섯 번째로 당신은 구글이라는 회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구글이 채용과정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으시네요. 여섯 번째로 만에 하나 당신 말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더 적합하다 해도, 여성을 더 많이 채용하려는 노력이 남성에게 내재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귀인 편향’의 승리입니다. 동전 앞면이 나오면 남성의 승리고, 동전 뒷면이 나오면 여성의 패배라는 식입니다. 당신이 언급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차이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남성은 분노 수치가 높고 협력 능력과 자기 절제 능력이 떨어집니다. 만일 그 반대였다면 당신은 분명 여성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부적합하다는 증거로 인용했을 겁니다. 당신은 남녀의 능력과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와 성격 쪽에 치중하는 데, 아마 전자는 당신의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 국가에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거의 전 과목에서 더 우수합니다. 이것도 역시 그 반대였다면 당신이 언급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찾을 수 있는 남녀 코딩 능력을 비교한 유일한 논문은 여성이 남성보다 깃허브GitHub(역주 – 개발자 협력툴) 기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프로젝트 외부자일 경우엔 성별이 알려지지 않아야만 그런 결과가 나왔죠.

실리콘밸리에서 여성들이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겪는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지난 12월 수전 파울러가 우버를 퇴사하기 전 자신이 경험한 사내 성폭력을 설명한 글을 읽어보세요. 최근 IT 분야 여성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실리콘밸리의 코끼리(역주 – ‘방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을 비튼 것. 모두가 인지하지만 말하지 않는 문제라는 뜻)” 설문조사를 보세요. 응답자 3분의 2가 성별 때문에 인맥을 쌓는 기회에서 배제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은 IT 산업을 넘어 전반적으로 알짜 업무를 맡을 확률이 떨어지며, 유용한 피드백을 덜 받게 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뻔뻔하다고 여겨집니다. (남성들은 진취적으로 여겨지는데도요.) 여성이 관리자를 맡을 경우 능력 있다고 비치거나 호감이 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능력 있어 보이면서도 호감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신은 “남녀 격차가 성차별을 암시한다고 간주하는 건 그만 두어야 한다”고 쓰셨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굳이 남녀 격차에서 성차별의 존재를 읽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말대로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차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동물들도 그런 남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의 경우 특정 차이가 선천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인간 사회는 동물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차이가 극명하니까요. (딴 얘기지만 당신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일부 보수층은 진화론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건 블랙 유머에 가깝네요.)

당신이 인용하는 특정 남녀 차이가 진화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성인 남성과 남자 아이들에게만 마케팅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학 컴퓨터공학 전공생 중 여성 비율은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여성 컴퓨터공학자 비율은 국가별로 차이가 큽니다. 성격적 차이조차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일례로 위계가 강한 국가에서는 남성들이 친화성(심리학적으로 겸손, 이타심, 배려 등의 특질을 포함한 용어)이 더 강하고 야망과 승진욕은 덜합니다. 그렇다는 건 미국에서 나타나는 일부 남녀 차이는 여성들이 아직도 상대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렇듯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끼리만 경쟁을 하는 분야에서는 소위 ‘여성적’ 특질들은 사라져버립니다. 소프라노와 발레리나들이 누가 탑이 되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사람은 절대 없을 겁니다.

당신이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구성요건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역도선수나 체조선수의 경우라면 문제가 간단합니다. 당신처럼 양식화된 정규 분포 도형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힘이 세고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더 유연합니다. 그래서 최상위권 역도선수는 남성, 최상위권 체조선수는 여성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일차원적인 직업은 드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사람’도 ‘사물’도 포함되는 광범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팀워크 능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혼자 일하는 괴짜 프로그래머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수석 엔지니어로 올라가면 팀을 운영해야만 합니다.)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비율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이런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겁니다.

당신이 내비치는 프로그래머에 대한 그런 편견은 우리가 일하는 IT 분야에서 여러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팀워크 부족과 제품 테스트 실패 때문에 신규 공개된 제품이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많고, 여러 프로젝트가 기한과 예산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개발 단계에서 여성 인력 참여가 부족해서 제품이 실패한 사례를 들 수도 있습니다. 구글플러스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용자들은 가입하려면 자신의 성별을 표시해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당신과 사진을 공유했습니다”처럼 성별을 표시하는 알림을 쉽게 보내려는 의도였습니다. 개발에 참여한 사람은 전부 남자였고,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에서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를 꺼린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겁니다.

이런 실패는 단순히 IT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IT 기술은 현대인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글이 인류 상당수에게 잘 맞지 않는 가상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동차 좌석과 회사 책상이 대부분 여성들에게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널리 사용되는 약 중에서 남성에게만 시험되는 약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마지막으로 여성 채용을 확대하려는 구글의 시도가 남성 차별이라는 견해를 살펴보죠. 당신은 채용과정에서 지원자의 성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적절한” 남녀 비율로, 그러니까 채용 풀 중 재능 있는 지원자 비율에 비례하는 쪽으로 수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부 여성들은 남성 중심 문화 때문에 지원을 꺼리게 될 겁니다. 인사담당자들은 남성 중심 환경에서 확립한 고정관념에 비춰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게 될 거고요. 당신은 “사람들을 소속된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개인으로 다뤄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최고의 인력을 뽑으려는 것이고, 이를 방해하는 여러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는 겁니다.

왜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여성이 그렇게 적은지, 왜 구글은 그 수를 늘리려고 하는지, 그게 과연 공평한 건지 처음 궁금증이 든 시점에서 당신은 여러 똑똑한 조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동료들에게 IT 산업에서 겪은 일을 물어볼 수도 있었겠죠. 자신의 편견과 상충되는 증거를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검색 엔진이 있죠.) 당신을 위한 독서 목록을 만들어봤습니다. 션 스티븐스와 조너선 하이트가 헤테로독스아카데미에 올린 글은 남녀의 심리적 차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두었습니다.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나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 아니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주의할 점이 많습니다. 제이 도는 미디엄에 올린 글에서 여성이 IT 분야 직장에서 차별받는다는 증거를 요약합니다. 진화생물학자 수전 사데딘이 쿼라에 올린 글은 당신의 글에 보이는 진화 생물학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격파합니다. 구글 수석 엔지니어를 지낸 요나탄 정거가 미디엄에 올린 글은 IT 산업에 대한 당신의 오해를 논합니다. 클레어 케인 밀러의 뉴욕타임즈 칼럼은 외로운 괴짜 천재 신화의 해악을 파헤칩니다. 신시아 리는 여성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당신의 오류를 “우먼스플레인”하는 글을 복스에 썼습니다.

제가 꼭 이 글을 쓸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저는 바쁜 사람이고 당신이 약간의 노력만 기울였다면 이런 상황이 방지됐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전 제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압니다. IT 산업의 여성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항상 겪어야만 할 테니까요.

 

래리 올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출처: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17/06/02/upshot/how-to-raise-a-feminist-son.html?mc=adglobal&mcid=facebook&subid1=sectiondiversitytest&ad-keywords=auddevgate&mccr=lifeopinion

원문 게시일: 2017년 6월 1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우리는 딸들에게는 선입견에 맞서 싸우고 너희의 꿈을 좇으라고 가르치지만, 아들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글 클레어 케인 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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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오늘날 우리는 우리 딸에게는 ‘넌 되고 싶은 건 뭐든지 될 수 있어 – 그게 우주비행사든 현모양처든 말괄량이든 천상 여자아이 같은 여자아이든!’  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와 역할이 열리고 있지만, 남자아이들의 역할은 아직도 제한받고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아직도 소위 여성스럽다고 생각되는 관심사를 가지는 것이 터부시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해야 하거나 남자아이들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는 억눌러져야 한다고 소리를 듣는다.

만약 모두가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 한다면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말했듯 “나는 우리가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아들을 딸처럼 키울 때까지 이것은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I’m glad we’ve begun to raise our daughters more like our sons, but it will never work until we raise our sons more like our daughters)”.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남성의 역할이 함께 확장되어야 여성의 역할이 비로소 진정으로 폭넓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여성에게만 이로운 일이 아니다. 현재 남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뒤처지고 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핑크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남자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협동력, 공감력, 성실함 등 ‘여성적’이라고 판단되는 기량들은 현대 직장과 학교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량들을 요구하는 직업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자신의 새 저서에서 페미니스트 딸을 키우는 방법을 거론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우선 페미니스트를 단순하게 ‘모든 면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사람’ 이라고 정의를 내렸으며 해당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신경과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를 만나며 가장 최근 연구와 데이터들을 활용했다. 필자가 만나본 이들은 ‘친절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자신의 꿈을 좇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눈물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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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우는 양과 빈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5세가량의 남자아이들은 화를 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 외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교육 활동그룹 ‘어 콜 투 맨'(A Call to Men)의 공동 창설자 토니 포터(Tony Porter)는 말한다.

“우리의 딸들은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로봇처럼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에게는 넓은 감정의 범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자기 자신을 멈추고 ‘나는 화난 게 아니야. 나는 지금 겁에 질려있어.’라고, ‘나 상처받았어’,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알려주세요.”라고 토니 포터는 말한다.

롤모델을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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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의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롤모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특히 더 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상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남자아이들은 행동, 학업, 소득 등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David Autor)와 멜라니 와서맨(Melanie Wasserman)는 이에 대해 남자가 책임감 있게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토니 포터는 “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존경할만한 남자들을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

덧붙여 남성 롤모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여성 모델도 제공하라. 당신이 직접 알고 있는 여성이 이룩한 업적들에 관해 얘기하고 또 스포츠 정치 미디어 등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명한 여성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편모 가정에서 자라난 아들들은 대개 여성의 성취를 매우 존중한다고 저소득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아이들을 위한 ‘어번 프렙 아카데미'(Urban Prep Academies)단체 창설자 팀 킹(Tim King)은 말한다. 팀 킹은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어머니들만이 아닌 다른 여자들도 이렇게 존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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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어른들에게는 이분법적인 성 역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린이들을 겨냥한 상품들은 50년 전보다 더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 공주님은 분홍색이며 트럭은 파란색이라는 색깔 구분이 더 이상 장난감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컵과 칫솔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 역할에 대한 완고한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분홍색이 남자아이, 파란색이 여자아이를 상징했었다. 수많은 연구 또한 영유아는 장난감에 강한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고 뒷받침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여자 남자 장난감을 나누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게 되는 약 2~3세 시기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시기는 사회적 압력이 선천적인 선호를 억압할 수 있는 시기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학과장 캠벨 리퍼 (Campbell Leaper)는 단적 연구들이 장난감의 성 구분은 아이들 성별에 따른 장기적인 학업적, 공간 지각적, 사회적 능력에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목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면 자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심사가 전통적으로 어떤 성별에 귀속되어 있든 말이다. 모든 아이가 모두 같은 일을 재미있어 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 갇혀 아이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블록 놀이나 찰흙을 가지고 노는 장난을 제안해 보라. 사회학자들은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자아이들이 분장 놀이를 하거나 미술을 배워보도록 격려하라고 제안한다. 성차별적인 편견을 보면 지적하라. (“장난감 쇼에 여자아이들만 나오는 건 정말 별로네. 남자아이들도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이러한 행동들은 남자아이들을 돕는 동시에 여성의 지위를 향상할 수 있다. 부모가 딸이 축구를 하거나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장려하지만, 아들이 발레를 배우거나 간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스러움’을 ‘더 낮은 신분’과 연관 짓는 행동이라고 연구원들은 밝힌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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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몇몇 엄마들은 딸을 키우지만, 아들은 사랑해준다”라고 흑인 청소년교육 관련 작가이자 강연가인 자완자 쿤주후(Jawanza Kunjufu)가 말했다. 이런 엄마들은 자신의 딸에게는 공부하고 집안일을 돕고 교회에 가도록 밀어붙이지만, 아들에게는 유독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짚어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데이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10세~17세 여자아이들은 매주 남자아이들보다 2시간 더 집안일을 하고 있으며, 남자아이들은 집안일을 했다고 용돈을 받을 가능성이 15% 더 높다고 한다.

“아들들에게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 우리 딸들이 회사에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유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아들들도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라고 씽크탱크 뉴 아메리카(New America)의 CEO 앤 마리 슬라터(Anne-Marie Slaughter)이 말한다.

남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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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맞벌이 부부여도 남편보다 아내가 아동과 노인을 더 많이 보살피며 더 많은 양의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또한, 현대 사회는 간병 및 육아 관련 직업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아이들에게도 다른 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가르치라. 성인 남성들이 자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함께 얘기해보고, 친부모와 친척들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딸들뿐만 아니라 아들도 함께 돌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라고 앤 마리 슬라터는 얘기한다. 아픈 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입원해 있는 친척을 방문할 때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반려동물이나 나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겨보라. 아이들을 보거나,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의 스포츠팀 코치로 활약하거나 가정교사로 일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라.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실에 영유아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초등학생들의 공감하는 능력을 증가시키고 공격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을 나눠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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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가능하면 집안일을 하거나 육아 활동을 할 때 성 역할을 거부하라.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 사회학자 댄 클라슨(Dan Clawson)는 주장한다. “만약 엄마가 음식을 요리하고 있고, 집을 청소하는데 아빠가 잔디를 깎고 있고 집을 자주 비운다면 아이는 그걸 보고 배우게 됩니다.”

맞벌이 부부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아들이 청소년일 때 모친이 적어도 1년간 일을 했다면, 그 아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또 다른 연구는 아들이 14살이 되기 전 엄마가 경제활동을 한다면 그 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 케이틀린 맥긴(Kathleen McGinn)은 “경제활동을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남성들은 부부의 역할에 대해서 훨씬 성평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잇게 격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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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애리조나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이 끝날 때쯤 아이들은 성별로 서로를 차별하기 시작하며 이런 행동을 성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성 친구와 함께 노는 아이들은 문제 해결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리처드 페이브스(Richard Fabes)는 “성별로 그룹을 나누거나 활동을 나누는 게 더 빤히 보일수록, 더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켄터키 대학의 발달 심리학자 크리스티아 브라운(Christia Brown)은 아이들이 성별을 근거로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도록, 영유아 생일파티와 스포츠팀에 남녀 차별 없이 모두를 초대하고 함께 활동하라고 조언한다. 성별에 따라 구분을 짓는 언어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 선생님이 “얘들아(Children)” 대신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Boys and girls)”이라고 말하는 경우 아이들의 성적 고정관념과 전통적 성적 역할분담이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였고 이성 친구와 노는 시간이 적었다.

여성 친구가 있는 남성들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볼 가능성이 작다고 포터는 말한다.

상대가 거절했을 때에는 그 거절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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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존중과 허락을 배우는 또 다른 방법: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이 남의 몸을 만질 때는 서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라. 또한 ‘싫어’라는 단어의 힘을 가르치라. 간지럽히고 장난치며 놀다가도 아이들이 ‘싫어’라고 말하면 멈춰라.

건강한 문제 해결 방법을 집에서부터 보여줘라. 이혼과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돼서도 연인 관계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버지니아 대학의 국가 결혼 프로젝트(National Marriage Project) 회장이자 사회학자인 W. 브래드퍼드 윌콕스 (W. Bradford Wilcox)는 말한다.

다른 이들이 편협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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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누군가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라. 또한, 아들과 함께 역할극을 통해 놀림과 괴롭힘을 보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브라운은 권장한다. 

아들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부모는 말을 해야 한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것은 잘못된 행동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아들이 더 좋은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기대하라. “남을 깔보거나 편협하거나 무례하거나 모욕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육할 수 있게 늘 주의해야 한다”라고 킹이 말한다.

‘여자애’ 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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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여자애처럼 뛰네”, “계집애 같아” 등 비하적인 단어나 성차별적인 농담은 하지 말고, 당신의 아들이 말하게도 하지 마라.

 더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성차별과 그러한 단어도 조심해야 한다. 베이츠 대학 소속 사회학자인 에밀리 케인(Emily Kane)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은 아들들이 놀림당할까 봐 아들들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잘할 만한 것을 성별에 따라 우리 멋대로 판단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차별을 없애는 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대학의 뇌신경학자 리스 엘리엇(Lise Eliot)은 남자아이가 여자 같다는 놀림을 받는다면 “아니, 구슬 놀이는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할 수 있는 건데!”라고 대답하거나 “나는 여자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남자보다 여자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것을 추천한다.

책을 많이 읽어라, 특히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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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남자아이들은 과학과 수학에 뛰어나고 여자아이들은 언어와 독서에 두각을 보인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편견은 인간이 그 편견대로 행동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아들보다 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리퍼는 이야기한다. 그러니 아들들과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독서를 장려하며 편견에 맞서 싸우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주인공 소년이 세계를 구하고 여자친구도 구하는 고전적인 이야기보다 딱딱한 틀을 깨고 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또는 고전적인 책이나 뉴스 이야기를 마주치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라: 왜 “유치원에서의 하루”에 나온 엄마는 맨날 실내복을 입고 있고 집 밖으로 안 나갈까? 왜 뉴스에 나오는 건 꼭 나이 든 아저씨들일까?

“고정관념을 매우 잘 발견하고 습득하는 3살쯤 이러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고정관념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이게 당연한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려요.”라고 브라운은 말한다.

소년 시절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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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운다는 건 뭘 하면 안 되는지, 뭘 해도 되는지 온종일 말해야 하고 성적인 차이를 완전히 지워버리려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다. 한 예를 들자면 모든 XY 염색체를 가진 포유동물은 과격한 몸싸움 같은 놀이를 즐긴다고 엘리엇은 말한다.

그러니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고, 농담하고, 운동 경기를 함께 보고, 나무를 타고, 야영장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오라. 남자아이들에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너희들에게는 네 감정을 인정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라. 너희들은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가족을 돌봄으로써 가정을 지킬 수 있음을 알려줘라. 남자에게는 강한 면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불의를 보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강함을 보여줘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열정을 좇는 법을 알려줘라.

여성들은 어떻게 디즈니 공주를 현대화했는가

여성들은 어떻게 디즈니 공주를 현대화했는가

출처: 버즈피드 “How Women Modernized The Disney Princess

원게시일: 2016년 12월 9일

 

지난 여름 <모아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폴리네시아 소녀의 이미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즉각적으로 주인공 모아나의 현실적이고 다부진 신체에 주목했다. <모아나>를 론 클레멘츠와 함께 감독한 존 머스커는 7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모아나에게 차별점을 주려는 마음이 담긴 의도적인 시도”라면서 “우리는 모아나가 액션 영웅이 되기를 바랬다”고 설명했다.
머스커 감독은 근육질 몸이 모아나를 차별화한다고 보지만, 일부 디즈니 팬들에겐 그런 선언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감독이자 작가인 브렌다 채프먼은 2012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화살을 쏘는 주인공 메리다에 대해 “실제 소녀를 원했다”면서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팔과 허리, 다리가 가느다란 소녀가 아니라 운동선수 같은 소녀를 원했다”고 말했다. 채프먼은 <메리다>가 동화의 관습을 뒤집었다고 설명한다.
그보다 14년 전, 뮬란의 성우 밍나웬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신데렐라의 정반대”이며 “(뮬란은) 드레스가 아니라 갑옷을 입는다”고 묘사한 바 있다.
디즈니 여주인공이 이전 여주인공들과는 다른 노선을 취했다는 주장은 1989년작 <인어공주>의 당찬 공주 에리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다. 머스커와 함께 <모아나>와 <인어공주> 등 다양한 디즈니 영화를 제작한 론 클레멘츠 감독은 1990년 스크립츠하워드뉴스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애리얼의 붉은 머리색에 놀란 사람들도 있다면서도 “우린 (머리색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에리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공주는 그 이전의 공주들과는 다르다’는 말은 동물 친구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만큼이나 디즈니 공주 공식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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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스토리 및 개발 아티스트 수 니콜스의 초기 스케치 (Courtesy of Sue Nichols; Walt Disney Co.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그러나 뮬란의 아름다운 근육이나 모아나의 활동적인 몸매는 문자 그대로 이들의 ‘형태’를 빚어낸 은막 뒤의 여성들이 아니고서는 영화관에 걸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머스커는 7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모아나에 대해 “우리 제작자를 비롯해 이 영화의 여성 관계자들은…’말벌처럼 허리가 잘록한 여성은 안된다. 더 현실적인 몸의 형태를 주자. 바람이 세게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자’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디즈니 여주인공도 공주 공식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리얼 이래로 공주들은 매번 규칙을 조금씩 굽혀오기는 했다. 그리고 디즈니가 캐릭터를 더 똑똑하고 용감하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변화를 추구해온 것은 디즈니 내부 여성들의 역할이 크다. 디즈니가 내부적으로 공주 영화들이 여자아이들에게만 소구력이 있는지 논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 공주의 의미를 뿌리부터 뒤흔들며 주인공을 21세기 여성으로 탈바꿈시켰던 여성 부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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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브렌다 채프먼 / Jeff Singer for BuzzFeed News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1966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소위 ‘9인의 노장(Nine Old Men)’이라고 불리는 20-30년대에 입사한 영향력 있는 감독들이 은퇴(혹은 사망)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해 이들을 대체한 신진 감독들은 여전히 대부분 백인 남성이기는 했지만 여성 등장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문에는 큰 변화를 이끌어낼만한 힘이 있는 여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80년대 대부분이 지나도록 애니메이션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각적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스토리 아티스트’ 중에는 여성이 전무했다. ‘파이프라인’ 문제(역주 – 주로 IT 분야에서 낮은 여성 고용율의 원인을 관련 전공자 수급에서 찾으려는 비유)가 있었다. 1979년 디즈니를 퇴사한 돈 블루스 감독이 차린 ‘돈 블루스 프로덕션(Don Bluth Productions)’에 7명의 여성 아티스트를 빼앗겼던 것이다. 그렇게 디즈니를 빠져나간 인물 중 하나인 로라 쿡은 블루스가 당시 디즈니에서 적극적으로 여성을 승진시키던 몇 안 되는 감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87년 <인어공주> 초기 제작 단계에서 디즈니는 젠더 균형에 있어 작은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이 발걸음은 박스오피스 성공으로 그 가치를 톡톡히 증명했다. 채프먼은 미대를 갓 졸업하고 스토리 수습생으로서 디즈니에 입사했다. 채프먼은 자신을 고용했던 남성이 내려다보는 말투로 “당신이 여자라서” 이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회상(링크)한 바 있다. 이후 채프먼은 디즈니 스토리 부문의 수장이 되었고 <라이온킹>의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이끌었으며, 작가이자 감독으로 <메리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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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이 그린 <인어공주>를 대표하는 장면 / Walt Disney Pictures

<인어공주>의 엔딩 크레딧에 오른 7명의 스토리 아티스트 중 여성은 채프먼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 입사시기가 가장 늦었던 채프먼은 에리얼이 해변의 에릭 왕자를 지켜보며 ‘저 세상의 일부(Part of Your World)’를 반복(리프라이즈)해 부르는 부분을 스케치하는 임무를 맡았다. 채프먼은 짝사랑에 빠진 어린 인어공주 에리얼 뒤로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을 그렸고, 이는 <인어공주> 전체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기도 했다.
에리얼의 가장 큰 적인 바다마녀 우르술라 애니메이션화를 맡은 케이시 지엘린스키는 “9인의 노장이었다면 에리얼은 굉장히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에리얼은 인간 왕자를 쫓아 바다를 떠나기까지 하는 결연한 젊은 여성이다. 극도로 순응적인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등 이전의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조개껍데기 비키니를 입은 빨강머리 에리얼은 아버지를 거스르는 호기심과 반항의 화신이다. <인어공주>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에드 곰버트는 “월트 디즈니 때와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에리얼도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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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메이터인 케이시 지엘린스키 / Emma McIntyre for BuzzFeed News

제임스 B. 스튜어트의 책 <디즈니워DisneyWar>에 따르면 디즈니 임원진은 <인어공주>가 어린 소녀들에게만 인기가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우려가 무색하게 <인어공주>는 1989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가 되었고 음악으로 아카데미 상을 두 개나 받기도 했다. <인어공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지만 머스커 감독 자신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에리얼이 왕자 없이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부 여성들에게 타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상영회에서 한 관객이 제작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충분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추궁해 클레멘츠와 머스커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LA타임즈의 보도도 있다. (해당 기사 작성 과정에서 클레멘츠와 머스커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디즈니의 다음의 공주 영화는 타인에게 오해 받는 왕자가 독서광 벨을 성에 가두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화려한 뮤지컬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였다.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 린다 울버톤을 영입했다. 아직도 디즈니 대표 시나리오 작가인 울버톤은 1992년 <미녀와 야수> 개봉에 즈음하여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상부에서 비난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디즈니는 내가 여성인만큼 성차별적인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울버튼은 채프먼과 작사가/제작자인 하워드 애쉬먼과 함께 다면적인 여성 히로인 벨을 만들어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울버튼은 젠더 문제에 대해 더 민감해져야 한다는 비전이 있었다. 당시 디즈니에 근무했지만 <미녀와 야수>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지엘린스키는 한 남성 스토리 아티스트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했던 일을 회상했다. 벨이 포로로써의 삶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울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지엘린스키는 울기는 하겠지만 펑펑 울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채프먼은 벨이 야수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야수의 잔인성에 맞서는 장면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분노한 벨이 “당신은 성질을 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야수는 침묵 속에 빠진다. 채프먼이 둘의 충돌을 그린 스토리보드를 제시했을 때 함께 스토리 작업을 하던 10명의 남성들은 열렬히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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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의 야수와 벨 / Buena Vista Pictures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그러나 한계를 밀고나가는 일이 전부 이처럼 쉽지는 않았다. 울버튼은 2016년 5월 엔터테인먼트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벨의) 대사 한 줄 한 줄이 전부 전쟁이었다”고 회상한다. 잔인한 새어머니 밑에서 하녀라는 운명에 쾌활하게 순응하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벨은 자신을 잡아 가둔 야수의 면전에서 소리친다. 울버튼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여성 주인공을 희생자로 그리는 개념이 이미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는 것을 꼽는다. “난 60, 70년대의 여성 운동을 거쳐온 사람이고 이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 벨이 왕자가 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조용히 견뎌내고 그저 순수한 장미만을 원한다고? 이렇게 심한 학대를 겪으면서도 착한 마음을 유지한다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미녀와 야수>의 시각 효과에 관여했던 수 니콜스는 버즈피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벨에게 여성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자신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나중에 포트 부인 캐릭터로 이어졌다. 니콜스는 벨이 야수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느낌을 받으려면” 여성의 지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돈 블루스 프로덕션’에서 수 년간 일한 후 다시 디즈니에 돌아온 로라 쿡은 마지막 장면에 벨이 인간으로 변한 야수를 부드럽게, 머뭇거리며 어루만지는 모습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자신의 사진을 찍어 참고했다고 말한다. 7명으로 이루어진 벨 에니메이션 팀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쿡은 “여성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편안했다고 설명한다.
울버튼은 1992년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로서는 대담하게 “벨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서 “90년 대의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벨은 왕성하게 책을 읽어치우는 독서가이며 “시골 생활” 이상의 것을 원한다. 악역 개스통은 벨의 저항에도 구애를 멈추지 않는 무례한 여성혐오자다. <미녀와 야수>는 여전히 사랑 이야기지만 벨은 자랑스러운 비혼 여성의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간 캐릭터다. 그리고 벨을 그쪽으로 움직인 것은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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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메이터이자 스토리 아티스트 로라 쿡 / Emma McIntyre for BuzzFeed News

그 다음에 등장한 두 명의 디즈니 여주인공인 자스민과 포카혼타스는 다소 부침을 겪었다.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는 아랍 시민단체로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주요 인물들은 시각적으로 백인화(whitewashing)하는 반면 악역들은 외모와 말투에 “민족적” 특성을 강화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알라딘>의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레베카 리스는 <알라딘> 제작 당시 아랍 남성(혹은 여성) 아티스트를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스민은 아버지 술탄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자신이 원하는 남편감을 찾으려 하는 인물이다. (자스민은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상대이기는 하지만 공식 디즈니 프린세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기사에서는 실제 왕족이 아니거나 공식 디즈니 프린세스가 아닌 경우도 공주로 다루고 있다.)
자스민이 아버지 술탄에게서 받는 애취급과 압박은 에리얼보다도 더 심하게 그려진다. 또 자스민은 영화 속에서 남성 특권 의식(male entitlement)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알라딘과 자스민의 아버지, 자파가 자스민의 결혼 상대를 논하자 자스민은 “다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서서 제 미래를 결정하려 하시다니. 저는 우승 상품이 아니에요.”라고 소리친다. <알라딘> 크레딧에 오른 16명의 스토리 아티스트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리스는 정원에서 술탄이 새로 가득 찬 새장 속에 비둘기를 집어넣자 자스민이 충동적으로 새장을 열어 새들을 더 넒은 세상으로 풀어놓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의 충돌하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설명한다. 리스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스민이 원하는 건 자유라는 걸 그렇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알라딘>은 지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고 싶어하는 여성 자스민을 그린다.
<알라딘>의 두 번째 여성 스토리 아티스트인 니콜스는 자스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파를 유혹하는 장면에 참여했다. 지니가 마법을 통해 자스민을 억지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파를 속이기 위해 자스민은 자파의 치아 사이에 있는 “작고 귀여운 틈”을 노래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자신을 구하려는 알라딘의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리스는 “자스민은 해야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똑똑한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왕자님”이 자스민을 구해내지만, 그 과정에서 자스민의 도움이 들어가는 것이다.
<포카혼타스>는 세상의 통념에 저항하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젊은 여성을 그리는 데 <알라딘>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간다. 17세기에 배경을 두고 있는 <포카혼타스>에서 여주인공은 식민지 개척자와 사랑에 빠져 사형 위기에 놓인 그를 구해내고 그 과정에서 무장 충돌을 막아낸다. 그러나 <포카혼타스>의 서사는 전형적 이미지(stereotype)과 역사적 왜곡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포우하탄 족 문화에 대한 자문을 제공한 셜리 ‘작은 비둘기’ 커스타로우 맥고웬이 <포카혼타스>를 비판한 것은 유명하다. 1995년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맥고웬은 디즈니가 자신을 오도했다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 이야기가 이미 너무 왜곡되었기에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포카혼타스>의 크레딧에 오른 스토리 아티스트는 전부 남성이었으며 그 중에서 미대륙 원주민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인공 포카혼타스를 그린 17명의 애니메이션 팀에도 여성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렇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해도 꼭 필요한 ‘청소’ 팀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청소 팀은 거친 스케치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청소 팀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에밀리 줄리아노는 팀의 역할이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에서 좋은 부분을 보존하고 이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청소 팀은 여러 가지 오류를 잡아낸다. 줄리아노는 특히 포카혼타스가 숨을 들여마시자 넓은 가슴이 위로 치솟다가 (다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실수를 고친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포카혼타스의 가슴이 제대로 붙어 있도록 확인한 것은 청소 팀의 공이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유해한 신화를 공고하게 하기는 했지만 <포카혼타스>가 디즈니 공주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 없이(실제로 결혼식을 보여주건 암시하건 간에) 끝난 영화라는 점은 언급할 만하다. 포카혼타스는 남자 대신 자신의 공동체를 선택한다. 부상을 입은 존 스미스가 같이 유럽에 가자고 제안하지만 포카혼타스는 이를 거절하고, 영화는 포카혼타스가 배를 타고 자신의 삶에서 멀어져 가는 스미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끝난다.

인종적 재현에 있어 나쁜 성적을 받아든 디즈니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 1998년작 <뮬란>에서는 확연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뮬란>은 젊은 여성인 뮬란이 남장을 하고 아버지 대신 중국군으로 참전하는 영화다. <뮬란>의 제작자 팸 코츠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디즈니가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종 집단의 일원을 제작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폈다고 설명한다. 특히 선구적인 캐릭터 디자이너 첸이 챙(Chen-Yi Chang)과 시나리오작가 리타 샤오(Rita Hsiao)가 팀 저변 확대를 도왔다. <뮬란> 비주얼 개발에도 참여했던 니콜스는 이메일을 통해 “<뮬란>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할 때쯤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인종적 특성이 디자인에 드러나도록 해야한다는 지시를 실제로 받았다”고 밝혔다.
비주얼 개발팀으로 참여했던 캐롤라인 허는 여성적이고 예쁘면서도 남성 군인으로 여겨질 만한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허는 뮬란이 “남성의 갑옷을 입어야만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뮬란은 남성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했던 소녀다. 즉 여성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남성적인 일을 하는 소녀를 어떻게 여성으로 그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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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은 뮬란. Buena Vista Pictures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허는 이런 난점 때문에 뮬란은 디즈니 프린세스 상품화에서 어려운 위치에 놓였다고 설명한다. 보통 판매되는 뮬란 인형은 뮬란이 영화 내내 입고 있는 갑옷이 아니라 여성적인 옷이 입혀져 있다는 것이다. 허는 “뮬란은 소녀틱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디즈니에게 가장 까다로운 지점이다”라면서 “현재 상품들을 보면 뮬란은 다른 ‘진짜’ 공주들처럼 강조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다른 공주들이 “진짜” 공주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은 로맨스였지만, 뮬란과 샹의 관계가 비중이 적었던 것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코츠는 제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결혼의 가능성을 제외했다고 설명한다. “끝났다고 도장을 꽝 찍기 위해, 깔끔하게 포장한 듯한 인생을 위해 뮬란이 결혼을 하는 식의 영화는 싫었다”면서 코츠는 “뮬란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코츠는 <뮬란> 제작 당시 여성 스토리 아티스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한다. 로나 쿡이 디즈니를 떠난 이후 남아 있는 스토리 아티스트들은 전부 남성이었다. 코츠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몸의 형태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남자들 속에 파묻혀 긴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런 점이 두드러졌던 장면은 군인들이 뮬란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될 때였다. 뮬란은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여성이라고 밝혀지는데, 영화 화면 상으로는 뮬란의 벗은 몸이 비춰지지 않는다. 남성 아티스트들의 초기 스케치에서는 “뮬란이 전체 (부대) 앞에서 여성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건 너무나 모욕적으로 느껴졌다”고 코츠는 회상한다. 1998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코츠는 초기 버전에서는 뮬란의 상급자가 사람들 앞에서 뮬란의 옷을 벗겨내는 장면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코츠는 당시 “남자들은 전부 이게 여성들에게 모욕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코츠 덕분에 최종 버전에서는 뮬란의 정체가 거의 사적인 상황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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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개발 아티스트 수 니콜스의 티아나 플레이스 광고. Courtesy of Sue Nichols

<공주와 개구리>는 전세계적으로 총 2억 6,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는 디즈니에게는 흥행 실패로 간주되는 성적이다. 또 이런 미적지근한 성적을 낼까 우려한 나머지 디즈니는 <라푼젤>에서 남자 캐릭터 플린의 역할을 늘렸고 남자 아이들이 너무 ‘여자애’ 같다는 이유로 영화를 멀리하지 않도록 원제를 라푼젤Rapunzel에서 탱글드Tangled로 바꾸기까지 했다. 디즈니 공주 영화가 다른 관객층을 쫓느라 정작 소녀들에게 매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디즈니 에니메이션 부문을 이끌던 에드 캐트멀은 2010년 시카고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제목을 ‘탱글드’로 바꾸는 것은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답했다. 캐트멀은 “여자아이들만을 위한 동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면서 디즈니는 “모두가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플린은 분명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플린의 보이스오버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A.O.스콧의 비평은 “각진 턱을 가진 라푼젤의 연인 플린이 공주 이야기를 이렇게 일시적으로 납치하는 것은 냉철한 상업적 계산으로 보인다”면서 “관객석에 있는 불안해하는 소년들에게 ‘여자애’ 같은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말하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2012년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에서는 마침내 디즈니 공주영화가 왕자를 버리게 된다. 채프먼이 아이디어를 내고 감독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메리다는 이전의 여러 디즈니 공주들과 마찬가지로 정략 결혼을 거부한다. 그러나 메리다는 자스민이나 뮬란처럼 궁극적으로는 부모님도 받아들일 만한 다른 결혼 상대를 찾는 식으로 해피엔딩을 맞지 않는다. 메리다는 엄마랑 화해를 한 후 모든 구혼자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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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 Disney / Pixar

<메리다>는 첫번째 장면부터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비판한다. 영화를 여는 것은 활쏘기를 좋아하는 메리다에게 “숙녀”를 기대하는 엄마다. 이후 메리다는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활쏘기 대회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몸을 꽉 죄는 실크 드레스의 소매와 등 부분을 찢은 메리다는 활쏘기로 모든 구혼자를 제친다.
채프먼은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소녀틱한 공주의 틀을 깨고 싶었다”면서 “그런 관념과 싸우는 공주,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공주,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싸울만큼 자존감이 강한 공주, 그러면서도 약점이 있는 공주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채프먼의 지휘 아래 픽사의 기술팀은 머리카락을 에니메이션화 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메리다의 빨간 곱슬머리는 성격만큼이나 제멋대로다. 또 메리다 이전 대부분의 디즈니 공주와는 달리 메리다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다. 메리다의 아버지는 중간 중간 긴장을 해소하는 코믹한 요소일 뿐이다. 채프먼은 “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원했다”면서 “에리얼과 벨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성 최초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을 감독한 채프먼은 두 번째 여성 감독인 제니퍼 리가 등장할 길을 닦아 주었다. 제니퍼 리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참여한 2013년 작 <겨울왕국Frozen>은 두 자매의 관계를 다뤄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이뤄냈다. 로맨스는 서브플롯에 불과한 이 영화를 블록버스터급 흥행작으로 만든 것은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였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홍보 영상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감정적인 클라이막스는 안나가 오랫 동안 사이가 멀어졌던 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다. 안나는 자신의 목숨을 구할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으러 절뚝거리며 향하는 대신 언니를 죽이려는 영화의 악당과 언니 엘사 사이에 몸을 던진다. 그 결과 안나는 얼음으로 변하지만 놀랍게도 중요한 건 남자의 사랑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엘사가 얼어붙은 동생 안나를 껴안고 울기 시작하자 진정한 자매애의 포옹 덕분에 저주가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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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집중하는 브렌다 채프먼, 에밀리 줄리아노, 케이시 지엘린스키의 사진 (좌측부터 순서대로). Courtesy of the artists

남편 로버트와 함께 겨울왕국 삽입곡을 작곡한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온 노래 ‘렛잇고(Let It Go)’가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라고 말하는 주제가”라고 설명한다.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영감을 얻은 리 감독은 시나리오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게 된다. 본래 뿌리와는 굉장히 먼 방향이었다. 스튜어트의 저작 ‘디즈니워’에 따르면 겨울왕국은 2003년 초기 제작 단계에서는 (한 여성 임원의 말을 빌리자면) “한 못된 년(a terrible bitch)”에 대한 영화였다.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의 동화 원제대로 ‘눈의 여왕(The Snow Queen)’을 제목으로 사용했던 당시에는 마음이 냉담하고 악독한 엘사가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렛잇고’를 듣고 난 후 리는 엘사를 엄청난 마법의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모르는 강력하면서도 불완전한 여성으로 재구성했다. 스크립트노트와의 인터뷰에서 리는 “어떤 날엔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자 이게 안나다. 이게 안나의 여정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그거다. 자, 이건 엘사다. 이건 엘사의 여정이다’라고 한 적도 있다”고 회상하면서 그게 “이 영화의 주제고 내가 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다”라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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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클라이막스 장면의 엘사와 안나. Walt Disney Pictures

연속으로 백인 공주를 내놓았던 디즈니는 마침내 <모아나Moana>를 공개했다. 인종, 문화적 재현에 기하는 노력을 한 차례 더 강화한 디즈니는 마오리 족 출신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를 채용했지만 와이티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를 거절하게 된다. (최종 필름 크레딧에는 와이티티가 시나리오 작가로 올라 있지 않다.) <인어공주>, <알라딘>, <공주와 개구리> 등에서 재현 문제로 논란을 빚은 디즈니로서는 클레멘트와 머스커에게 감독을 맡기는 것에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클레멘트와 머스커 감독은 폴리네시아 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제작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확대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모아나>가 분리된 토착 문화를 무턱대로 차용했다는 비판이 일었으며, 폴리네시아 원주민 영화를 디즈니가 만드는 것에 대한 식민주의적 의미를 고찰하는 시각도 있었다.)
<모아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 이야기는 암시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아나는 그저 자신의 섬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똑똑하고 강한 소녀이며 그녀의 몸은 현실적이고 성적 대상화가 되어있지 않다. <모아나>는 디즈니의 이전 공주 영화에서 여성들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의 총집합이다. <모아나>는 벨과 티아나의 지성과 야망, 뮬란과 메리다의 실제 인간에 가까운 몸, 포카혼타스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 <메리다>와 <겨울왕국>에서 시도된 로맨스에 대한 거부가 합쳐져 있다. <모아나>를 제작한 오스냇 슈러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전 단계를 통틀어 사랑 이야기는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끼어넣을 자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모아나의 성별은 거의 부차적인 문제다. 미래 지도자라는 모아나의 위치에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아나가 드넓은 바다로의 모험을 꿈꿀 때 부모님이 질겁을 하는 건 단순히 위험하기 때문이지 ‘여자애한테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슈러는 초기 버전에서 모아나가 성별에 관련된 장벽에 맞닥뜨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원한 방향이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디즈니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공동 에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에이미 로슨 스미드는 디즈니 여주인공에게 기대되는 육체적 특징에서 벗어나 모아나의 활동성에 집중했다. 비록 스미드와 직접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지만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와의 인터뷰를 보면 스미드는 에니메이션 팀에 모아나의 뛰는 모습이 “더 활동적”이고 “더 자신감에 넘쳐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말한다. 모아나가 덩치가 산만한 반신반인 마우이의 귀를 움켜쥐고 “넌 내 영웅이 아니야”라고 씩씩 댈 때 모아나의 강인한 이두박근이 수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작 <겨울왕국> 때만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던 결혼이 들어가지 않는 플롯과 허리가 가느다랗지 않은 공주를 상상할 수 없던 디즈니임을 고려할 때 모아나는 기념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츠는 모아나를 지난 디즈니 여주인공들과 극명하게 대비하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클레멘츠는 타임 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아나를) 공주 이야기와는 다른 전통을 따르는 영웅기이자 성장영화라고 봤다”고 설명한다. 이런 말은 단순히 클리셰일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선 환원주의적이기까지 하다. 프로즌에서 안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벨은 2013년 인터뷰에서 서투른 구석이 있는 안나가 “공주 관념에 반하는 공주”라고 설명한다. 이어 벨은 안나가 “말이 너무 빠르고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 나오며 우아하지도 않지만, 대담하고 끝없이 낙관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한다.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도 세세하게 분류된 나머지 서투름과 전복이 동일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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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에서 마우이에게 자신의 배에 오르라고 명령하는 모아나. Walt Disney Co.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지난 세월 동안의 변화는 각각의 공주들이 그 이전의 공주를 옭아맸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리엘부터 시작해 공주들은 점점 더 인간처럼 변해왔다. 제작에 참여하는 실제 여성의 수가 늘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아리엘, 벨, 자스민, 포카혼타스, 뮬란, 티아나, 라푼젤, 메리다, 안나, 엘사, 그리고 모아나는 각각 뚜렷한 특성을 갖고 있다. 공주 관념에 반하는 공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주로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지난 30년 가까이 그래왔다. 각각의 불완전한 캐릭터들이 조금씩 더 인간성을 띄게 된 것은 작품 뒤에 있는 여성들의 노고 덕분이다.
슈러는 모아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즉각적으로 이해했던 것은 여성 제작진이었다고 말한다. 모아나의 움직임을 계획하던 단계에서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 포즈를 보여주며 ‘이런 게 전사지’라고 외쳤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홀로 있어도 강인하고 똑똑하며 용감한 모아나는 이전의 디즈니 공주들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공주들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여성들 덕분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캐리 피셔 (Carrie Fisher) 의 죽음을 추모한 페미니스트 앤 떼리얼트 (Anne Theriault)의 트윗 전문 번역

Anne Theriault 는 토론토에 거주중인 “My Heart Is an Autumn Garage” (내 마음은 가을 주차장) 의 저자이자 페미니스트다. 캐리 피셔의 비보를 접한 2016년 12월 28일 다음과 같은 트윗타래를 남겼다.

1

그녀는 젊지 않아. 황금 비키니를 입고 있지도, 로브를 걸치고 있지도 않지. 대신 자신이 일생을 바친 일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어: 반란군을 이끄는 거지.

이건 ‘모든 것을 잃은 레아 공주’ 야.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 부모, 다크사이드로 넘어가버린 아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는 남동생,  애인.

이 레아는 포기할 수도 있었어. 포기하는게 더 쉬웠을꺼야. 그런데 그녀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일생동안 알게 된 모든 남자들보다 더 강했어. 포기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레아에게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한낱 자신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삶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야. 완전. 씨발. 파이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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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나 한처럼 꼬리 내리지 않고 레아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맞서 싸워나갔어.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맞서.

장기적으로 보고 싸우는 거였거든. 스타워즈 진짜 영웅은 이 여자라고. 레아가 없었다면 저항군은 진작에 다 죽어나가고 없었을꺼야.

오르가나 총 사령관을 보면 난 정말 너무 많은 남자들한테 너무 험한 일을 당했으면서도 계속 다시 그들을 구원해주는 사람이 보여.

오르가나 총사령관을 보면 내 눈에는 상실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그 역경을 이겨낸 여자가 보여. 사람을 다루는 것도 전술적인 지식도 겸비한 훌륭한 지휘관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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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공주도 멋졌지. 하지만 오르가나 총사령관이야말로 나는 피셔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도 난 힘들때는 오르가나 총사령관을 생각할꺼야.

우리 모두 가슴 아픈 상실과 고통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자리에서 일어나 부츠와 조끼를 챙겨입고 제국을 파괴할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레아 오르가나는 입양되어 공주라는 자리를 얻었지만 총사령관이라는 직함은 자신이 진짜 노력해서 얻는 거라는 점에 대해 자주 생각해.

아니 진짜 루크가 훈련하는 장면은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데 레아는 그것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도 반도 안 알아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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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저항군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낸건 제다이가 아닌 특별한 훈련은 받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오르가나 총사령관은 내게 리더가 되기 위해서 특별하거나 선택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가르쳐 줬어. 그저 꾸준히 그 자리에 나타나 배우고 일을 하면 리더가 될 수 있는거야.

 

[전문 번역] 미셸 오바마 2016년 10월 13일 뉴햄프셔 연설 – 트럼프의 음담패설 및 성추행 관련 논란 비판

영어 전문: https://www.whitehouse.gov/the-press-office/2016/10/13/remarks-first-lady-hillary-america-campaign-event-manchester-nh

와우! 모두 에너지가 굉장하시네요!

우선, 모두 안녕하십니까. 뉴햄프셔에서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제게 뉴햄프셔는 집과 같은 곳이고 오늘 날씨도 정말 아름다운 가을날이네요. 저를 위해 특별히 준비하셨죠? 정말 감사합니다.

뉴햄프셔 주지사이자 차기 상원의원 매기 하산 (Maggie Hassan) 에게 감사의 인사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를 멋지게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여러분의 하원의원이자 너무나도 좋은 친구인 애니 맥클레인 커스터 (Annie McKlane Kuster) 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네요. 그리고 곧 다시 하원의원으로 돌아올 캐롤 쉬아 포터 (Carol Shea Porter), 이 모든 분이 너무나 좋은 친구입니다. 집행위원회이자 주지사 후보인 콜린 반 오스턴 (Colin Van Ostern)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나와계신 여러분, 귀한 시간을 내 참석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관중 중 한 명: 사랑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불과 몇 주 후면 대선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우리는 지금 차기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과 팀 케인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뉴햄프셔의 지지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진지하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동의하시겠지만 이미 이번 한 주는 꽤 힘들었기 때문이죠. 이번 한 주는 저에게 특히나 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매우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지난 화요일 백악관은 세계 여자 어린이의 날을 기념하며 Let Girls Learn (여자 어린이들이 공부하도록 해라)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정말 멋진 기념행사였죠. 그리고 아마 제가 영부인으로서 참석하는 마지막 Let Girls Learn 행사가 될 것입니다. 행사에서 저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근사한 여성들, 미국에 사는 여자 어린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성들을 만났고 우리는 마음속 깊은 대화를 편안하게 또 오래오래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가진 꿈과 희망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열망과 포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멋진 여성들은 그저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뿐인데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고, 자신의 자유를 억압받았으며, 학교에 다니는 게 밝혀질 경우 가족과 지역 공동체에서 퇴출당할 각오를 해야 했죠.

그래서 저는 이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사회는 여자와 여자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져야 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누구든지 당신들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고, 또 자신들의 의견을 세상이 들을 수 있게 꼭 말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화에서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받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여러분에게 격려를 받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게 화요일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이번 총선과 선거 유세는 여성을 향한 끊임없는 비하와 공격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언어는 여성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고, 그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과 지성을 가진 어른들로 키워내고 싶은 부모님들과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기본적인 인간의 품위는 지켜야 한다고 믿는 시민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미국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은 그가 살아오며 또 선거 유세를 하며 여성들에 대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입에 담기도 싫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 발언들을 오늘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후보는 저번 주 여성들을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진심으로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네요.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던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생각이 납니다. 예측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저를 뼛속까지 뒤흔들어 놨어요. 솔직히 끔찍한 일이 없었다는 듯이 서서 준비해 왔던 캠페인 연설을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쁜 꿈이라도 꾼 양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부정직함은 제 양심이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 많은 이번 대선의 또 하나의 사고였다고 한쪽으로 치워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냥 “야한 말”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성들끼리만 있는 탈의실에서 나눌 수 있는 소소한 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이 성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스스럼없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이며, 여성에게 강제로 키스하고 더듬는 성추행을 자랑하는 것이며, 또한 그 행위를 저질스럽고 음란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해 우리 아이들이 티비에서 혹시 듣게 될까 걱정될만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 후보에게 이러한 언행은 어쩌다가 딱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그가 일평생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생겨난 셀 수 없이 많은 일 중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것을 들으며 정말 제 일 같았습니다. 또한 이렇게 느낀 게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 특히 여성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여성의 몸에 대해 난무하는 그 치졸한 촌평들. 여성의 야망과 지성에 대한 모독. 여성에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

잔인합니다. 무섭습니다. 그리고 아픕니다. 너무 아파요. 마치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몸에 대해 야한 말을 하면서 성희롱을 할 때 느끼는, 그 가슴이 쿵 가라앉는 아픈 기분. 직장에서 누군가 내가 불편할 정도로 가까이 서 있을 때 느끼는 기분. 누군가 나를 너무 대놓고 오래 쳐다봐서 내 몸에 내가 들어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해질 때 느끼는 그 기분.

그 기분은 바로 두려움이자 침범당하는 공포입니다. 갑자기 누군가 나를 잡아챘을 때, 싫다고 거절했는데도 듣지도 않고 계속 들이댈 때 너무 많은 여성들이 느껴본 기분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그리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매일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증조할머니에게서 들어온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상사가 여직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던 시절에 어머니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던 시대의 이야기들.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이런 폭력과 학대와 모욕을 절단하려 쉼 없이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2016년에 선거 유세를 하며 찍어내듯 똑같은 말을 매일 매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말에 파묻혀 익사하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해온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저 물 밖으로 얼굴만 내놓고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실 얼마나 이런 언행에 상처받고 있는지 드러내면 여성들이 약해 보일까 봐 그 모든 아픔을 숨기는 것 같습니다.

아픔을 인정하면 취약해 질까 봐 무서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차피 말해봤자 내 말보다 저 남자의 말을 믿는 것을 너무 자주 봐 왔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은 다 삼켜버리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익숙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여성들을 이렇게 경시하는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후보의 언행을 그냥 또 지나가는 뉴스 헤드라인 처럼, 여성들이 너무 민감해서 부적절하게 분노하는 것처럼, 이게 정말 정상이고 이게 정치인 것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햄프셔의 여러분, 분명히 해 둡시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치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치입니다. 이것은 참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여러분이 민주당, 공화당, 독립당 그 어느 당에 속해 있든, 그 어느 여성도 이렇게 취급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이런 학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자리가 선거 유세 자리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정치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는 이러한 모욕적인 언행들을 용인하거나 우리 아이들에게 노출해서는 안됩니다. 4년은커녕 1분도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일어나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할 때입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언행은 지금 바로 멈춰져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일들이 다 자란 우리 성인 여성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온다면,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어린 여자아이들이 지금 사회로부터 자신의 외모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재하고 싶은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지금 어떤 교훈을 배우고 있나요?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이 나라의 성인 남성들과 어린 남자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왜냐하면 제 인생에서 만난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가족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모욕적인 언행을 그저 매일 일어나는 탈의실 농담거리라고 치부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남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제가 아는 남성들은, 그리고 여러분이 아는 남성들은 여성을 이렇게 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남성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이며 자신의 딸들이 여성에 대한 이러한 험악한 언어에 노출될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남편들이며 남자 형제이며 아들이며, 여성이 이토록 비하 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그들은 이번 대선이 남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본보기를 찾고 있는 우리 남자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여섯 살 난 아들이 하루는 티비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나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 같아”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 그러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라고 묻자 그 꼬마 아이가 “왜냐하면 저 아저씨는 다른 사람을 돼지라고 불렀거든. 다른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면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어.”

고작 여섯 살 난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입니다. 여섯 살배기도 어른은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화된 문명인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정확히 짚고 넘어갑시다. 정말 강한 남성들, 정말로 좋은 본보기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여성을 비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강한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정말로 강한 사람들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읍니다. 그리고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한 곳으로 뭉치게 하고, 묶을 수 있는 사람.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이 상처를 메꿔줄 수 있는 사람.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할 수 있는 사람. 힘뿐만이 아니라 연민을 가지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저는 온 마음 다 해 진심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그런 대통령이 될 거라 믿기 때문에 오늘 여기 서 있습니다.

보세요, 우리는 힐러리가 이 일의 적임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 유세뿐만이 아니라 일평생 동안 자신의 자질과 끈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죠.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가치 대부분을 힐러리는 지니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받은 교육으로 남들에게 봉사하기를 권장합니다. 힐러리가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법학 학위를 받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지지하고, 영부인으로서 아이들 건강보험을 위해 앞장섰고, 상원에서는 저렴한 육아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협동의 가치를 가르칩니다. 힐러리가 2008년 대선을 진 후 자신의 상대 밑에서 국무장관으로 일하기로 한 것 같이요. 그 결정으로 힐러리를 대중의 지지도 얻고 나라를 위해 일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에 지름길은 없으며, 어떠한 직업을 가지든지 거기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라고 가르칩니다. 자, 힐러리는 지금까지 변호사, 법학 교수, 아칸소 주 주지사의 부인, 미국 전 대통령의 영부인, 미합중국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이라는 직업들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직업에서 성공했으며 이렇게 여러 직업을 거치며 쌓은 경험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본 그 누구보다도, 버락보다도 또 남편 빌 보다도 더욱 대통령직을 위해 준비가 완벽하게 된 후보입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힐러리는 바로 여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나면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국무장관을 지냈던 단 4년 동안의 시간에만도 힐러리는 정말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힐러리는 112개국을 누비며 휴전, 평화협정, 반체제인사 석방을 협상해야 했습니다. 특위 청문회 앞에서 11시간 동안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일이 힘들어져도 힐러리가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더 쉬운 일을 찾아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살면서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통령 후보로써 힐러리는 일평생을 공직에 바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남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딸을 키워낸 뛰어난 어머니입니다. 의리 있는 아내입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던 날까지 보살폈던 헌신적인 딸입니다. 그 누구든지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딸이라면 매우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 후보가 누가 되었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힐러리보다 더 적임인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만약 우리가 힐러리에게 등을 돌린다면, 우리가 상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만약 힐러리의 상대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너희들이 보고 듣고 있는 게 모두 다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임을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언행을 우리가 지지한다는 것임을요. 우리는 우리 아들들에게 여성들에게 굴욕감을 줘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딸들에게 여성들은 저렇게 대접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편견에 가득 차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전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걸 보여주길 원하시나요?

그리고 이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아이들에게 나쁜 예를 보여줄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악례를 남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정말 오랫동안 전 세계의 나라들에게 여자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여성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범적인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의 대통령이 밥 먹듯이 여성을 비하고,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자랑하면 전 세계인들 앞에서 우리의 도덕적인 지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자유와 정의와 인간 존엄성의 상징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뉴햄프셔 시민 여러분. 다행히도 우리는 이런 광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여성에게는 이 대선의 결과를 바꿔놓을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식이 있고, 우리에게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8일 우리 여성들은, 우리 미국인들은, 우리 문명인은 모두 힘을 합쳐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았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언행은 용납할 수 없다고.

기억하십시오. 2012년 버락이 당선되었을 때 경합주의 승패는 여성들의 투표로 인해 결정되었습니다. 바로 여기 뉴햄프셔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니 내 표 하나쯤이야, 나 하나로 뭐가 크게 달라지겠어, 하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기억하십시오. 2012년 버락은 뉴햄프셔에서 40,000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크게 이긴 것 같죠. 하지만 이 숫자를 더 파헤쳐보면, 뉴햄프셔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했던 표는 지역별 각 66표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죠. 각 지역에서 66명이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면 버락은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여기 나오신 한 분 한 분은 자신이, 가족이,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각 지역의 결과를 뒤집고 이번 대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의 표를 던지시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힐러리의 상대 후보가 이 지역을 통째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힐러리 클린턴과 상대방 둘 중 하나가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는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힐러리가 아닌 사람을 뽑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는 것은 그 상대방이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보세요. 11월 9일 아침에 일어나서 당신의 딸이나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자신을,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투표를 하지 않았을 때, 힐러리가 당선되도록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그 기분이 어떨까요?

우리는 그런 미래가 오도록 허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려 티비를 꺼버리고 현실을 외면하도록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겁에 질려 주저앉아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우리는 충격과 암울함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이 나라의 여성들이 몇백 년간 해왔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하러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시죠? 그들이 낮게 갈 때 우리는…

관중: 높게!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투표하는 행동은 매우 훌륭한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화를 돌리고, 현관문에 노크해가며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하러 나오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힐러리 선거캠프 스태프에게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젊지 않은 이들 모두 소셜 미디어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해 주십시오. 왜 이번 대선이 중요한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왜 이번 대선이 이 나라의 의식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지 당신이 말해 주세요. 이번 대선에 정말 많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11월 8일 당신의 선택은 미국이 인간을 존중하는 대통령을 가지게 될지, 아니면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학교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우리를 대표해 사회를 바꿔 갈 대통령일지 아니면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사람일지. 여성은 자신의 몸과 건강에 관련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일지, 아닐지. 이번 대선에 이런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피곤함에 몸을 맡길 수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며 무시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선거일에 집에 있거나 놀러 갈 여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11월 8일,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합중국의 위대함은 이 모든 사람이 스스로 내재하고 있는 존엄성과 가치를 인지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8일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합중국에는 남성, 여성, 모든 인종과 계급을 위한 자리가 있으며, 우리 한 명 한 명은 모두 위대한 미국의 대서사시 중 하나이며 우리는 늘 함께일 때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8일, 우리는 미국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인은 혐오와 공포를 거부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높은 이상을 버리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힘이 들수록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 그 이상을 실현해 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통합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우리는 자유의 축복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지구상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던 그 평등과 기회와 희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어떤 누구도 여러분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 마세요. 희망을 중요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청년들을 위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를 한 곳으로 모으고 우리의 가장 좋은 모습을 이끌어 낼 대통령. 그 대통령을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남은 26일 동안 우리는 힐러리 클린턴과 팀 케인이 이길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그럴 것이라는 걸 알아요. 저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다들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소매 걷어붙일 준비가 되셨습니까? 온 동네를 누비며 문에 노크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좋아요. 이제 시작합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길.

 

10월 6일 트윗 백업

[@Guardian] IT 업계 거물들 트위터에서 여성 팔로잉 수 턱없이 적어… 일론 머스크는 기사에서 지적받기 전까진 단 한 명의 여성도 팔로우 안해 https://t.co/CWNCWIruWp

— 앞에 (@upfrontfeminism) October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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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09:5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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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 머스크는 마더보드( https://t.co/gjncYZtz08) 기사에 트위터를 뉴스 용도로 쓰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방어했지만 이후 화요일(4일)에 GQ매거진 기자 케이티 위버(@caityweaver)를 팔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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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09: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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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 그러나 가디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 IT 거물들 대부분이 여성을 턱없이 적게 팔로우. 구글 피차이 CEO는 267개 팔로우 계정 중 여성은 21개에 불과했으며 애플 팀쿡 CEO은 51개 팔로우 계정 중 여성은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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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0: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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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 이외에도 에어비앤비와 넷플릭스 CEO, 빌게이츠, 에릭 슈미츠 역시 팔로우하는 여성 계정 비율 적어.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조사 대상 중 가장 많은 여성(39명)을 팔로우했지만 그럼에도 남성(78명)의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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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0: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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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 가디언지는 IT업계 남성들에게 팔로우할 만한 여성 트위터리안 추천 목록을 제공. 미국 백악관 최고기술책임자(CTO) 메간 스미스(@USCTO), IT 업계 다양성을 추구하는 프로젝트인클루드의 엘렌 파오(@ekp)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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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0:1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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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onmag] 대리모 사업, 지구 반대편 여성을 착취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https://t.co/3N5rhNSx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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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0:2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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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부통령 토론 중 등장한 낙태 이슈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 – “낙태권을 종교의 맥락에서만 토론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 여성의 권리가 종교라는 바늘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가?” https://t.co/vI7bSxDy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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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0:5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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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남성 패션 트렌드 ‘손톱 하나만 매니큐어’ https://t.co/cEGyE3Kfxl #헴식이 http://pic.twitter.com/B5Lz3EqT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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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2:2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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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이 넘는 폴란드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차려입었고, 시위는 ‘검은 시위’로 명명됐다.

‘여성 검은시위’에 놀란 폴란드 낙태전면금지법안 폐기 절차 | 다음 뉴스 https://t.co/cFMaCSrTPt

— 메갤문학 (@mersnovel) October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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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12: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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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남자 사무관이 처음 만난 산하기관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금융위는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는 듯한 행동을 했다 https://t.co/JFFHn9SLV2 http://pic.twitter.com/f9ZZYr3c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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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02:1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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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fingtonPost] 폴란드 낙태금지법 시위: 23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들 https://t.co/wSc4Y7I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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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06:3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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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이란에서 열리는 여성 체스 선수권 대회, 히잡 착용 강요… 탑 체스 선수 개최지 변경 요구하고 나서 https://t.co/KZ2avyQNKs

— 앞에 – 페미니즘 뉴스레터 (@upfrontfeminism) October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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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16 at 07:41PM

[Racked / 전문 번역] 주머니의 정치학

원문: The Politics of Pockets (Racked)

원저자: 첼시 G. 섬머스 (Chelsea G. Summers)

File:Hillary Clinton DNC July 2016.jpg
출처=/wikimedia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할 때 입고 무대에 올랐던 옷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수트였지만 이는 눈속임에 불과했다. 수트는 흠잡을 때 없이 재단되어 클린턴의 권위를 나타내는 한편, 눈처럼 흰 색이 서프러제트 운동(suffragette movement · 여성 참정권 운동 – 역주)과 클린턴을 연결해주었다. 디자이너가 나타나지 않아 패션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아 모든 여성에게 속하는 옷이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힐러리가 입은 흰 수트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클린턴의 권위에 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수트에 한 가지가 빠져 있다는 점이 미심쩍은 오랜 역사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바로 주머니였다.

성차별이 주머니 부착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은 이미 많은 글에서 지적된 바 있다. 계급도 물론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남성복에는 눈에 보이는 넉넉한 주머니가 붙어있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없거나 작은 주머니만 달려 있곤 한다. 남성들은 주머니에 만족하다보니 별 말이 없지만 여성들은 100년도 넘게 부적절한 주머니에 대해 불평을 해왔다. 1905년 뉴욕 타임즈 기고문에서 셜롯 P. 길먼(Charlotte P. Gilman)은 “남성복의 우월함 중 하나는… 주머니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면서  “여성들은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옷에 깁거나 끈으로 메기도 했으며손에 휘두르기도 했지만, 가방은 주머니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더 없이 맞는 지적이다. 가방은 주머니가 아니다. 그리고 주머니는 바지보다도, 넥타이보다도, 사각팬티보다도, 심지어 수트보다도 의복에 있어 남녀 격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주머니는 정치적이다. 그러나 주머니가 어떻게 정치적인지는 보편적인 예상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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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A / C.BALOSSINI / Getty

 

한때 모든 사람들은 가방을 들고 다녔다. 중세시대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가방을 허리에 끈으로 메거나 벨트에 연결해서 입고 다녔다. 르네상스 축제에서 사람들이 차는 허리 가방(fanny pack)과 비슷한 형태였다. 농촌이 점차 도시화되고 범죄가 고도화되면서 사람들은 소매치기를 피하기 위해 여러 겹의 옷 속에 가방을 숨기기 시작했다. 남성의 재킷과 여성의 패티코트에 작은 틈새를 만들어 옷 속의 붙임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주머니는 남성 복식의 일부가 되어 코트, 조끼, 바지에 영구적으로 기워진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주머니에는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계속 옷에 포함된 주머니 없이 커다랗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옷 속에 숨겨야 했다. 페티코트, 파니에(Pannier · 엉덩이 옆쪽을 부풀리는 속옷 – 역주), 허리받이(bustle) 안쪽에는 물건이 가득 든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가방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가방에는 반짇고리부터 시작해 음식, 열쇠, 쌍안경, 열쇠, 향수병, 빗, 코담배갑, 필기도구, 돈까지 수도 없이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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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큘&샤트렌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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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의 2011년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기고문은 주머니 복식사를 위트 있게 개관하면서 크리스챤 디올이 1954년 했던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끝을 맺는다.  “남성들은 무언가를 넣기 위해, 여성들은 장식을 위해 주머니가 필요하다.”  이 발언을 뜯어보면 성역할이 복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성복은 실용을 위해, 여성복은 미(美)를 위해 설계된다. 그렇게 보면 주머니의 유무가 어떻게 성차별적인 시간을 고착화하는지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남성은 일을 하느라 바쁘지만, 여성은 남들의 시선을 받느라 바쁘다. 그러니 왜 주머니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식의 서양 복식 분석은 너무 단순화된 것이다. 물론 주머니에 성차별이 깃들어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주머니에 성차별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18세기 중반의 옷에 매달린 넉넉한 가방이 19세기 초 손에 드는 작은 ‘레티큘’로 옮겨간 것은 프랑스 혁명이 자산, 사생활, 예절의 기존 개념이 격렬하게 공격 받던 시기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가방이란 여성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설 때에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일종의 사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이런 자유가 극도의 위협으로 비춰졌다. 여성들이 갖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수록 여성의 자유도 줄어들었다. 옷 속에 잘 감춰져 있던 주머니를 없앰으로서 여성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선동적인 문서나 연애편지를 갖고 다니고, 시중 드는 사람 없이 움직이는 데 제한을 겪게 된다.

 

여성복 주머니는 19세기 말의 ‘이성주의 복식’ 운동에 와서 분수령을 맞는다. 1891년 창립된 ‘이성주의 복식 협회(Rational Dress Society)’는 여성들이 건강에 해롭지 않은 옷을 입도록 촉구했다. 코르셋 대신 뼈대가 없는 스테이스(Stays)와 블루머(Bloombers·속바지의 일종)를 선택하고, 헐렁한 바지를 입고, 움직이기 편해 자전거 등을 탈 수 있는 옷을 입자는 운동이었다. 20세기로 넘어가던 전후에 이성주의 복식 운동은 정점을 맞았는데, 당시 남성복에 15개 가량의 주머니가 달렸던 것을 고려하면 이성주의 복식에 주머니가 많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1899년 뉴욕타임즈 기사는 우스개 조로 문명이 주머니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사는 “우리가 더 문명화될 수록 더 많은 주머니가 필요해진다”면서 “주머니가 발명된 이후 주머니가 없는 족속 중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으며 여성들은 주머니가 없는 한 우리들과 겨룰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성주의 복식 협회’와 함께 등장한 것은 1세대 페미니즘의 신여성(New Woman)이었다. 서프러제트, 블루스타킹(Bluestocking), 미국 7대 명문 여대(Seven Sisters) 졸업생 등 급진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19세기 말에 유행하던 여성복에 달린 주머니는 장식이 많고 크기가 작고 실용적이지 못했으며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성주의 복식’은 여성들에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했다. 1894년 잡지 ‘그래픽(The Graphic)’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이 광경에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여성’의 주머니는 놀라울 만큼 실용적인데다 새로운 유행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여성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쑥쓰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을 수 있다면 누가 그런 태도를 취하겠는가?”

 

주머니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개념을 밀고 나가다 못해 1895년 여성의 자전거 “의상”에는 권총 주머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타임즈 기사에 인용된 어떤 재단사는 “모든 여성이 권총을 갖고 다니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많은 수가 권총을 갖고 다니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를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왜 주머니가 필요한 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오리털이나 가죽으로 덧대달라고 부탁하기에 권총을 위한 주머니임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19세기 말 주머니에 권총을 넣고 블루머와 트임 스커트 수트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타던 여성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이들이 총기 소유를 인정한 수정헌법 2조의 권리를 행사하던 때는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수정헌법 19조 통과가 26년이나 남아있던 시점이었다.

 

1910년 뉴욕타임즈에는 “서프러제트 복장의 수많은 주머니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에게 주머니가 많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 기사는 서프러제트 복장에는 일고여덟개의 주머니가 있으며 “입고 있는 사람에게도 잘 보이고 찾기 쉽다”고 설명한다. 잘 보이는 분명한 주머니에 대한 언급은 여성들의 복장, 사생활, 자산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남성과 맞서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활보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여성의 주머니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 무언가 사적인 것,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문제였다는 말이다.

 

서프러제트 복장에서부터 여성 CEO, 대선 후보, TV 심사위원의 수트를 주문 제작하는 수재나 베버리힐스(Susanna of Beverly Hills)에 이르는 100년 동안 여성의 삶과 의복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성복 주머니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를 쉽게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는 여성복에 주머니를 넣지 않으면 여성들에게 지갑을 팔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드라마 브로드 시티(Broad City)에서 일라나는 “보지는 자연이 준 지갑“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교통카드나 립스틱을 그 곳에 보관하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따라서 힐러리 클린턴의 수트를 보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서프러제트를 상징하는 흰 색상 뿐이 아니다. 옷에 주머니가 없다는 점이 힐러리를 지금과 같은 여성으로 만들어주는 특징이다. 힐러리하면 바지 정장이다. 이를 보여주는 티셔츠가 만들어지고 힐러리는 인스타그램에서 바지 정장에 대해 농담을 하며 힐러리 웹사이트 제작자들은 웹사이트를 바지 정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힐러리는 1990년대 초부터 바지 정장을 입었다. 보석 같은 파란색과 붉은색부터 잘 익은 열매와 탐스러운 망고, 사막의 푸른 색부터 금욕적인 회색까지 색도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성직자에 비교해도 좋을 정도로 클린턴의 정장은 예의 바르다.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전달하려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에 대한 해답이다. 흠잡을 데 없이 잘 포장된 바지 정장은 클린턴의 몸을 성인(聖人)처럼 내보인다. 정장 안으로 아무 것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 클린턴의 바지정장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숨길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의 역사를 유권자들이 이해하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