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칼럼 – 남자들에게, 당신도 포함해서.

원제: Dear Men: It’s You, Too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9일

*이 칼럼을 쓴 록산 게이는 퍼듀 대학교의 부교수이자 “나쁜 페미니스트”, “배고픔” 등 다수의 저서 작가

성폭력 관련 통계는 언제 들어도 소름끼치지만 그런 설명마저도 여성이 대면해야 하는 성폭력/성폭행의 진정한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 페미니즘 담론에서 우리는 ‘강간 문화’ 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이런 담론을 나눠야 하는 사람들, 즉 문제의 원인이 되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위해 변명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여자들은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는 그 개념조차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여자들이 히스테리 부리는 거야, 또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네.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어? 여자가 옷을 더 제대로 입고 다녔어야지, 행동을 똑바로 했어야지. 그걸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해?

회의론자들은 모든 말과 상황과 팩트를 어떻게 해서든지 비틀어서 여자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와중에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남자 – 유명하지만 사무치게 평범한 그런 남자들 –  가 성범죄자로 밝혀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나 다 공공연하게 알고 있던 그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고 국제적인 뉴스가 된다. 징그럽고 웃기지도 않은 범죄의 디테일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그 누가 다시는 목용용 가운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자신들이 경험했던 성폭력과 성추행을 알리고 있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이 순간 이 상황이 ‘이것이 나의 짐이고, 이것이 여성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다’ 라는 우리의 증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쳤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이제는 남자들의 차례다.

나는 성폭행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레벨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성폭력에 대해 몇 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말해왔고, 집필해 왔고, 트위터에서 활동해 왔다.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머리 끝까지 침식되어 있지만 이렇게 해야만 언젠가는 ‘강간 문화’ 라는 문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구식 개념이라고 우리 언어에서 추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해 왔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더 밝은 미래를 향해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특히나 악의는 없는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강간 문화를 수용할 때 더 멀어진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 중 나쁜 남자는 일부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남자가 없을꺼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로 그런 나쁜 남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추행은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실리콘 밸리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믿고 싶어한다. 성추행은 모든 산업, 모든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의 부적절한 의도와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좀 더 상냥하게 말했다거나, 술을 덜 마셨거나, 옷을 더 얌전하게 입었거나 웃어줬다거나 감사의 뜻을 표하거나 등등 여자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성폭력과 성추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남자라서 어쩔 수 없고, 남자들은 살살 구슬려야 하고, 성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이 더 제대로 행동했다면 이런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도 주장한다. 만약 여자가 옷을 더 얌전한 스타일로 입는다면 개성있는 외모를 감사하게 생각했다면, 혹은 도나 카란의 말을 빌리자면, “관능적이고 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이러한 배신 하나하나가 쌓일 때마다 여성 전체가 짊어진 짐은 더 무거워진다.

성폭력과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매번 반복되는 이러한 답변과 논리는 어떤 여성도 원치 않는 남성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를 마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든지 안 맞든지, 긴 옷을 입든지 짧은 옷을 입든지 원치 않는 관심을 받지 않는 일은 없다. 운이 좋은 여성들이 그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뿐이다.

성폭행은 언제나 ‘권력’ 이 그 중점이다. 물론 성적인 요소도 있지만, 성폭력은 누군가가 자신이 우위을 선점하고 있으며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다면 보편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성폭행을 경험한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을 무시하고, 목소리를 빼앗고 그들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성폭행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라며 축소시키는 여성들이 있다. 그냥 길을 걷다가 좀 야유를 당한거야. 그냥 어떤 남자가 좀 만졌을 뿐이야, 벽으로 밀치고 자기 몸으로 눌렀을 뿐이야. 그냥 강간 당했을 뿐이야. 무기도 하나도 없는 맨 손이었어. 10 블락 정도 따라오더니 그냥 돌아가던걸. 멍도 몇 개 안 들었어.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어. 내가 이 나라에서 당하는 그 어떤 일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나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 우리는 마치 후크송의 후렴부 같이 이런 말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들려준다. 왜냐하면 이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정말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단 1초도 더 이 짐을 짊어지고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일어난 후, 추잡한 개인 메세지를 보낸 이부터 강간까지 다양한 성폭행을 저지른 미디어 쪽 남자들의 목록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록은 나타났던 것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 목록을 봤다. 그 중 몇몇은 성적인 폭행을 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록에 올라오면 안 될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몇몇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사회적인 망신도 당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 목록은 미디아의 영향력이 약한 인디아나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도 이미 알려져 있는 악행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쁜 남자들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은 정말 많다.

그 목록 퍼져나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명예회손이니 익명 고발의 도덕성이니 하는 걱정들이 많았다. 이런 나쁜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입는 “착한 남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덧붙여 더 “약한” 성폭행이 더 질 나쁜 성폭행과 함께 있어서 나빠 보인다는 걱정도. 마치 여성들은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할 능력이 없으며 상황에 알맞은 태도인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감내해 온 고통보다 이 목록이 남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붇고 있었다. 사회는 자신들이 만나 온 나쁜 남자들을 걸러낼 수 있게 지금까지 입으로만 서로 정보를 교환하던 여자들이 이제 가시적인 목록을 만들자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Metoo 해쉬태그를 보자.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을 공유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말한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해봤어, 나도, 나도. 미 투.  나도 참여할까 고려했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지쳤다. 나는 이미 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공격받고 상처를 받았다고, 내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데 지쳤다.  너무나 아파서 이제는 아픈 것이 아픈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들이 뭔지 알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공개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계속 공유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특히 남자들은 성폭력이 이렇게 만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반응한다. 이들은 모를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패닉해서 모든 남자들이 성 범죄자가 아니고 자신들은 그렇게 일반화 당하고 싶지 않으며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픈줄 안다고 말해댄다. 남자들은 너무 많은 남자들이 성범죄자이며 여자들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성폭행 목록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너무 당황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하며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라고 묻는 남자들이 존재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남자들도 여자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며 해왔던 일을 함께 하면 된다. 남자들도 이제 앞으로 나서 “나도” 라고 말하며 여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일을 공유하면 된다. 남자들은 이제 좁은 사무실 복도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여자들을 코너로 몰아넣었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 어떤 외설적인 말을 했는지, 여자들이 싫다고 거절했을 때 그 대답을 듣지 않고 죄책감을 가지게 해서 결국 섹스를 강요했는지 등을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성폭력을 행사할 때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 모른 척 방관했는지,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웃어 넘겼는지 아니면 몰래 속으로 그 여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는지 – 말하면 된다. 이젠 남자들이 해답을 찾을 차례이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지 않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에 지쳤다.

[NYT] 칼럼 – 하비 와인스타인은 갔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문제는 남았다.

원제: Harvey Weinstein Is Gone. But Hollywood Still Has a Problem.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1일

*이 칼럼을 쓴 마놀라 다기스는 1987년부터 영화 평론을 시작했으며 현 뉴욕 타임즈 영화평론 공동 국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여성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가 부상하는 것을 읽고 내게 든 생각은 ‘뭐, 당연한 일이군’이었다. 와인스타인은 우쭐대는 골목대장 스타일로 유명하고, 와인스타인 밑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특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들은 바는 없지만 이런 행동은 영화산업에 널리 퍼진 끈질긴 여성 착취에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이후 10일 뉴욕타임즈는 이탈리아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아시아 아젠토를 포함해 3명의 여성들이 와인스타인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말하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즈의 와인스타인 탐사보도를 본 후엔 더 없는 혐오감이 들었지만, 뉴요커의 기사를 읽곤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여성들이 경험한 성폭력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때로는 추악했고 때로는 황당했던 나의 여러 경험도 떠올랐다. 뉴욕에서 어떤 감독을 인터뷰하던 중 그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확 기대오기 시작한  때도 있다. 나는 몸을 빼낸 후 침착하게 말을 계속해나갔다. 그때 나는 그 감독을 보편적인 남성 성차별주의자로만 생각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특유의 행동이라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냥 자기 권력을 여성에게 휘두르려는 또 다른 남자구나 싶었다. 이건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감돌고 있는 것은 뒤틀리고, 끈질기며, 당연하다는 듯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형 성적 착취와 폭력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의 보편성은 미국 영화 산업 전반에도 만연하다. 영화 산업을 쌓는 데는 여성의 도움이 들어갔으나 할리우드는 언제나 구조적으로 여성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남성 중심적 산업이었다. 할리우드는 역사적으로 어린 여성 예술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유통기한을 메겨왔다. 여성 감독 기용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오만하게도 여성 관객을 틈새 시장, 골칫거리,  나중에 가서 대충 맞춰주면 되는 상대로 취급해온 산업이기도 하다.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와인스타인에게 입은 피해를 고백하고 나선 건 너무나 고무적이다. 그러나 와인스타인은 이례적인 인물이 아니다. 와인스타인은  구조적 성차별의 일반적이고 악독한 증상일 뿐이다.  그를 용인해와놓고도 지금 와선 어깨를 으쓱하며 이 사건을 넘겨버리고 괜히 여성들에게 더 먼저 말하지 그랬냐고 묻는 모든 이들도 구조적 성차별의 증상임은 마찬가지다.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건 여타 산업이건 존재하는 다른 가해자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가 한때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고 피해자 중에 여러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포로 움직이는 산업, 침묵이 방패이자 무기이고 일을 얻는 조건인 할리우드를 일깨우는 강력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할리우드의 침묵은 역사적으로 영화 만드는 남자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남자들 중에는 루이스 B. 메이어 같은 이전 세대의 스튜디오 수장들이 있다. 와인스타인은 종종 추억 어린 눈길로 이런 거물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과거에 스튜디오 수장들은 우아하게도 ‘호색한(womanizer)’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런 예의 바른 비유법 속에는 ‘캐스팅 쇼파에서 보내는 시간’-역겨운 완곡어법을 하나 더 들자면-에서부터 성매매나 다를 바 없는 행위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어의 이름을 땄고 하늘보다 더 많은 ‘스타’를 자랑했던 제작사 메트로-골드윈-메이어는 “여러 임원 사무실 내에서 돌리는 용도인 ‘6개월 옵션녀’라고 알려진 여성들”이 있었다고 역사학자 스콧 아이먼은 말한다.

이런 일들이 뭐랄까, 평범하게 느껴진다면,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리 저리 돌리는 천박한 일면은 할리우드의 역사, 전통, 그리고 정체성 그 자체에 깊숙히 엮여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할리우드에 와서 스크린테스트를 받고 잘하면 계약을 하게 된다. 그 뒤에 나오는 얘기는 지겨울 정도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생생하다. 회사는 머리를 금색으로 염색시키고, 약을 먹이고, 다이어트를 시키고, 몸에 칼을 대게 한다. 운이 좋으면 마릴린 먼로(또는 그 시대의 ‘잇걸’)이 되고, 운이 더 좋으면 살아서 할리우드를 빠져나간다. 다른 이들은 이리 저리 돌려지는 여자로 남는다. 옛 시대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성 착취가 영화 산업의 일부가 되려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태도-야, 여기 할리우드야-는 살아남았다.

와인스타인의 커리어에는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이 있다. 1980년대 인디영화 판에서 부상하던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초기 회사 미라맥스를 골리앗 같은 주류 미디어 그룹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이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같은 미디어 공룡 기업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단조롭게 주판알을 튕기던 미디어 기업의 시대에 미라맥스는 활력과 신비한 분위기가 넘쳤다. 무엇보다도 미라맥스는 일약 스타덤에 오를만한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 배우들과 락스타 같은 남성 영화 감독(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와인스타인이 가끔 가다 누군가에게 (말 그대로) 펀치를 날리기는 했지만 할리우드에서의 실수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박스오피스의 성공과 매끈한 PR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 잡지 프리미어의 에디터였던 피터 비스킨드는 1991년에 와인스타인을 파헤치려 했지만 미라맥스가 광고를 빼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 다음에 알게된 사실은 와인스타인이 프리미어에 컬럼을 쓰게 됐고, 내가 와인스타인의 에디터가 됐다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언론의 약점을 꽉 틀어쥘 수 있었던 이유는 쌍방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와인스타인은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을 돕는 여성들을 도왔다. 2007년 와인스타인은 시민단체 ‘영화 속 여성(Women in Film)’이 주최하는 크리스탈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해 미라맥스 영화 <시카고> 등에 출연한 르네 젤위거에게 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와인스타인에 대해 밝혀진 사실들을 볼 때 와인스타인의 회사들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제인 캠피온 감독(<피아노>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주디 덴치(<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은 중년 여배우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건 진보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머리를 잘 굴려 옛 시대 스튜디오 스타일의 상품 다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보자면 와인스타인과 그 동생 밥 와인스타인이 여성에게 기회를 줬던 건 여러 종류의 영화를 개봉했고 또 모든 자원을 성공공식을 따르는 영화(그리고 남성 중심적 슈퍼 히어로 영화)에만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HBO 시리즈 <걸즈>의 공동제작자인 제니 코너는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나중에 돌아보면서 ‘그때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지’라고 회상할 순간”이라며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너의 말이 맞기를 바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멜 깁슨의 사례에서 보듯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자들을 너무나 잘 용서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땅바닥에 엎어진 동료에게 눈길을 주긴 하지만 다음 미팅에 가는 길에 밟고 지나가려는 목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동료가 어떻게든 다시 재기한다고 할 때 할리우드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냐고 물을 것이다. 이런 용서는 종종 사업에 중요한 것은 돈뿐이라는 익숙한 대사와 연결된다.

돈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영화 산업의 가장 역겨운 행태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여자, 흑인, 기타 등등을 쓰지 않는 이유는 돈이 안되서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은 할리우드를 좌파라고 보고 내부인들은 진보적 대의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영화 산업은 근본적 보수주의 원칙을 따른다. 이 보수주의가 서사 재활용, 여성(그리고 남성)의 성 착취, 남성 중심적‧백인 중심적 체제 유지를 조형한다. 에이바 듀버네이와 레나 던햄(던햄의 와인스타인 사건 관련 칼럼 전문 번역을 보시려면 여기로)와 같은 혁신적 인물들의 압력에도 영화 산업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내려놓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의 혐의 부상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영화 산업을 바꾸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번 사건은 그 압력의 일부다. 할리우드 내외의 운동가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할리우드의 편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기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영화 내 다양성과 관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LA타임즈에 따르면 시민단체 미국시민권연합(ACLU)의 촉구로 미국 연방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2015년부터 TV 및 영화의 여성 감독에게 접촉해 고충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성차별과 매일 싸워야만 하는 할리우드의 여성들을 위해 실질적인 변화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내가 변화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는 둔탁하고 유해한 고정관념(streotype)과 서사적 클리셰와는 다른 새로운 목소리와 비전이 영화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애호가를 위해서도 변화는 필요하다. 나는 내 일생 동안 영화에 대한 모순적인 사랑 속을 헤맸다. 영화 속에서나 그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너무나 자주 영화에 드러났고, 나는 영화의 여성혐오와 영화가 주는 기쁨 간에 갈등했다. 영화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기만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분노할 때이기도 하다.

[NYT] 레나 던햄 칼럼 – 하비 와인스테인과 남성들의 침묵

원제: Lena Dunham: Harvey Weinstein and the Silence of the Men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9일

 

나는 23살에 할리우드로 갔다. 저예산 영화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에이전트를 구하고, TV 계약을 따냈다. 모두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을 동화 같은 성공이었고, 23살의 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저런 미팅을,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처럼 기뻐하며 돌아다녔다.

이런 미팅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과 이루어졌고 일상적인 성차별 행위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소규모의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할 거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여성들의 생리 주기가 겹쳐 한 주간 미쳐 돌아가는” 코미디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하고, 내가 “섹시한 여자랑 짝을 이루면 진짜 재밌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지나치게 길어졌고, 업무상 점심 자리가 영화사 임원의 파탄난 결혼을 고백하는 자리로 바뀌는가 하면, 내가 내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침대에서 뭐든 해주는” 여자가 아니냐고 계속 우기기도 했다.

나는 이를 견디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 새로 만든 친구이자 지금은 업무상 파트너가 된 제니 코너네 집 쇼파에 앉아 그 날 겪은 불합리함을 털어 놓곤 했다. 코너는 나에게 자신이 사다리를 오르며 겪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우리는 우리끼리 새로운 세상을 계획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세트장, 나대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임금을 낮춰 주는 건 꿈도 못꾸는 남성들, 보이는 곳 끝까지 여성들이 가득찬 회사,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대본을 쓸 기회를 꿈꿨다. 그걸 섹스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남자들에게는 가서 신발이나 쳐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남성들은 (예를 들어 주드 애파토우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덜 더러운 남성이다) 우리를 전적으로 존중했다. 내가 감독에 관해 끔찍하게 분노했던 건 어떤 게이 남성이 나한테 사준 지갑을 다시 가져가라고 했을 때뿐이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지난 한주간 하비 와인스테인이 수년간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여러 보도를 통해 할리우드의 모든 여성이 우리와 같은 길을 겪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게 분명히 밝혀졌다. 사업이나 예술을 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학대와 위협, 강요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와인스테인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질 남성들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일 지는 모르지만, 와인스테인 외에도 처벌을 받지 않고 날뛰던 가해자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십년간 그의 회사에 근무하거나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행동을 용인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시초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축소판이며, 전지구상의 여성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소유하고 침묵시키는 일은 영화 세트장만큼이나 페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일어나고, 할리우드는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용납하면 안되는지 시끄럽게 선언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좌파 쪽으로 기우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로저 에일스 (성희롱 혐의로 고발 당한 보수 매체 폭스 뉴스 창립자), 빌 오레일리(성추행 혐의가 불거져 퇴사한 폭스 뉴스 전 간판 앵커)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주저 없이 비난해왔다. 우리는 성폭력이 “락커룸 대화”일 뿐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어디도 아닌 할리우드의 인물이 여성을 모욕하고 정신적 충격을 입히는 끔찍한 취향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은, 특히 남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단 말인가?

이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아직도 가장 핫한 젊은 스타들과 작업하고 있다. 그는 부정했지만 앨런의 딸은 어릴 때 앨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는 적극 구명해야 할 선구적인 인물로 비춰지며, 최근 한 남성 스타는 나에게 폴란스키와의 작업은 “궁극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기소를 중지하고 미국 복귀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촉구하는 할리우드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도 와인스테인이었다.)

이런 거물들을 제쳐놓고도 할리우드의 남성들은 아직도 나쁜 행동을 무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여러 피해자로부터 직접 디스토피아 그 자체로 보이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나는 작년 내가 출연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감독에게 세트장이 아닌 곳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높은 자들의 반응은 감독을 옹호하고, 여성을 집요하게 취조하고, 그를 해고하기 전까지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 거였다.  감독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고대의 우정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 이런 권력 남용의 ‘정상화(normalization)’는 바로 그런 식의 행동에 기반을 둔다.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데다 의심의 여지 없이 끔찍한 와인스테인의 혐의는 논박도 무시도 불가해보인다. 나는 순진하게도 여태까지 할리우드의 영향력 큰 남자들이 보여온 침묵, 진실공방 속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집단적인 선택은 와인스테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무너져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내가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남성들은 잃을 것이 적고, 서사를 뒤집을 만한 힘이 많은 데다 이런 혐의를 둘러싼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일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와인스테인과 작업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있다. 와인스테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선물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영화 산업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기횐데도 말이다. 여성들에겐 우리가 이런 권력 남용은 물론 이런 행동의 원동력인 여성 혐오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2016년 가을, 나는 와인스테인컴퍼니에서 주최한 힐러리 클린턴 자선 행사에서 공연했다. 루머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의 후원 하에 공연을 하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너무나 돕고 싶다는 계산 끝에 참여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저런 계산을 했고, 그런 계산에 대해 사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 그리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는 데 꼭 필요한 입장 변화다. 나는 우리 산업의 여성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누군가와 악수를 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뭐가 미안한가? 더 이상은 어떤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가? 공백을 메우고 기준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당신은 무엇이 두려운가? 소문을 듣고서도 맡았던 어떤 역할이나 위원회 자리인가? 샴페인 한 잔? 등을 두드렸던 것? 와인스테인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찍혀서, 아니면 당신의 단체에 와인스테인이 기부를 해서, 혹은 당신에게 여자친구를 소개 시켜주거나 오스카 상을 받도록 도와줘서 부끄러운가? 혹시 정말 슬픈 일이지만 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 하에 살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성폭력 가해자라는 걸 알면서도 고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고객들을 그런 감독들의 세트장으로 밀어넣는 에이전시의 문제다. 달갑지 않은 문제를 묵과한 제작자들의 문제이며, 떠도는 소문을 들었지만 <판타지 풋볼>을 하러 자기 트레일러로 돌아갔던 배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비 와인스테인의 축복을 받는 위치를 잃을까봐 알아낸 정보를 보도하지 않았던 영화 산업 언론의 문제다. 일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얘기를 드러내기 두려워했던 여성들, 와인스테인에게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던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침묵, 특히나 와인스테인과 가깝게 지냈던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이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 문화를 공고히 할 뿐이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리 없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을 묵과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를 여기로 이끈 바로 그 길에 남게 된다. 소음을 일으키는 게 곧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게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다. 우리는 더 이상은 이런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더 크게 말해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출처: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17/06/02/upshot/how-to-raise-a-feminist-son.html?mc=adglobal&mcid=facebook&subid1=sectiondiversitytest&ad-keywords=auddevgate&mccr=lifeopinion

원문 게시일: 2017년 6월 1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우리는 딸들에게는 선입견에 맞서 싸우고 너희의 꿈을 좇으라고 가르치지만, 아들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글 클레어 케인 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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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오늘날 우리는 우리 딸에게는 ‘넌 되고 싶은 건 뭐든지 될 수 있어 – 그게 우주비행사든 현모양처든 말괄량이든 천상 여자아이 같은 여자아이든!’  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와 역할이 열리고 있지만, 남자아이들의 역할은 아직도 제한받고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아직도 소위 여성스럽다고 생각되는 관심사를 가지는 것이 터부시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해야 하거나 남자아이들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는 억눌러져야 한다고 소리를 듣는다.

만약 모두가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 한다면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말했듯 “나는 우리가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아들을 딸처럼 키울 때까지 이것은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I’m glad we’ve begun to raise our daughters more like our sons, but it will never work until we raise our sons more like our daughters)”.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남성의 역할이 함께 확장되어야 여성의 역할이 비로소 진정으로 폭넓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여성에게만 이로운 일이 아니다. 현재 남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뒤처지고 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핑크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남자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협동력, 공감력, 성실함 등 ‘여성적’이라고 판단되는 기량들은 현대 직장과 학교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량들을 요구하는 직업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자신의 새 저서에서 페미니스트 딸을 키우는 방법을 거론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우선 페미니스트를 단순하게 ‘모든 면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사람’ 이라고 정의를 내렸으며 해당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신경과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를 만나며 가장 최근 연구와 데이터들을 활용했다. 필자가 만나본 이들은 ‘친절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자신의 꿈을 좇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눈물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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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우는 양과 빈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5세가량의 남자아이들은 화를 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 외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교육 활동그룹 ‘어 콜 투 맨'(A Call to Men)의 공동 창설자 토니 포터(Tony Porter)는 말한다.

“우리의 딸들은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로봇처럼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에게는 넓은 감정의 범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자기 자신을 멈추고 ‘나는 화난 게 아니야. 나는 지금 겁에 질려있어.’라고, ‘나 상처받았어’,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알려주세요.”라고 토니 포터는 말한다.

롤모델을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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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의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롤모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특히 더 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상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남자아이들은 행동, 학업, 소득 등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David Autor)와 멜라니 와서맨(Melanie Wasserman)는 이에 대해 남자가 책임감 있게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토니 포터는 “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존경할만한 남자들을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

덧붙여 남성 롤모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여성 모델도 제공하라. 당신이 직접 알고 있는 여성이 이룩한 업적들에 관해 얘기하고 또 스포츠 정치 미디어 등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명한 여성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편모 가정에서 자라난 아들들은 대개 여성의 성취를 매우 존중한다고 저소득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아이들을 위한 ‘어번 프렙 아카데미'(Urban Prep Academies)단체 창설자 팀 킹(Tim King)은 말한다. 팀 킹은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어머니들만이 아닌 다른 여자들도 이렇게 존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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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어른들에게는 이분법적인 성 역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린이들을 겨냥한 상품들은 50년 전보다 더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 공주님은 분홍색이며 트럭은 파란색이라는 색깔 구분이 더 이상 장난감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컵과 칫솔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 역할에 대한 완고한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분홍색이 남자아이, 파란색이 여자아이를 상징했었다. 수많은 연구 또한 영유아는 장난감에 강한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고 뒷받침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여자 남자 장난감을 나누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게 되는 약 2~3세 시기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시기는 사회적 압력이 선천적인 선호를 억압할 수 있는 시기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학과장 캠벨 리퍼 (Campbell Leaper)는 단적 연구들이 장난감의 성 구분은 아이들 성별에 따른 장기적인 학업적, 공간 지각적, 사회적 능력에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목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면 자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심사가 전통적으로 어떤 성별에 귀속되어 있든 말이다. 모든 아이가 모두 같은 일을 재미있어 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 갇혀 아이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블록 놀이나 찰흙을 가지고 노는 장난을 제안해 보라. 사회학자들은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자아이들이 분장 놀이를 하거나 미술을 배워보도록 격려하라고 제안한다. 성차별적인 편견을 보면 지적하라. (“장난감 쇼에 여자아이들만 나오는 건 정말 별로네. 남자아이들도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이러한 행동들은 남자아이들을 돕는 동시에 여성의 지위를 향상할 수 있다. 부모가 딸이 축구를 하거나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장려하지만, 아들이 발레를 배우거나 간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스러움’을 ‘더 낮은 신분’과 연관 짓는 행동이라고 연구원들은 밝힌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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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몇몇 엄마들은 딸을 키우지만, 아들은 사랑해준다”라고 흑인 청소년교육 관련 작가이자 강연가인 자완자 쿤주후(Jawanza Kunjufu)가 말했다. 이런 엄마들은 자신의 딸에게는 공부하고 집안일을 돕고 교회에 가도록 밀어붙이지만, 아들에게는 유독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짚어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데이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10세~17세 여자아이들은 매주 남자아이들보다 2시간 더 집안일을 하고 있으며, 남자아이들은 집안일을 했다고 용돈을 받을 가능성이 15% 더 높다고 한다.

“아들들에게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 우리 딸들이 회사에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유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아들들도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라고 씽크탱크 뉴 아메리카(New America)의 CEO 앤 마리 슬라터(Anne-Marie Slaughter)이 말한다.

남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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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맞벌이 부부여도 남편보다 아내가 아동과 노인을 더 많이 보살피며 더 많은 양의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또한, 현대 사회는 간병 및 육아 관련 직업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아이들에게도 다른 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가르치라. 성인 남성들이 자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함께 얘기해보고, 친부모와 친척들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딸들뿐만 아니라 아들도 함께 돌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라고 앤 마리 슬라터는 얘기한다. 아픈 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입원해 있는 친척을 방문할 때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반려동물이나 나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겨보라. 아이들을 보거나,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의 스포츠팀 코치로 활약하거나 가정교사로 일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라.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실에 영유아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초등학생들의 공감하는 능력을 증가시키고 공격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을 나눠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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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가능하면 집안일을 하거나 육아 활동을 할 때 성 역할을 거부하라.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 사회학자 댄 클라슨(Dan Clawson)는 주장한다. “만약 엄마가 음식을 요리하고 있고, 집을 청소하는데 아빠가 잔디를 깎고 있고 집을 자주 비운다면 아이는 그걸 보고 배우게 됩니다.”

맞벌이 부부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아들이 청소년일 때 모친이 적어도 1년간 일을 했다면, 그 아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또 다른 연구는 아들이 14살이 되기 전 엄마가 경제활동을 한다면 그 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 케이틀린 맥긴(Kathleen McGinn)은 “경제활동을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남성들은 부부의 역할에 대해서 훨씬 성평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잇게 격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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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애리조나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이 끝날 때쯤 아이들은 성별로 서로를 차별하기 시작하며 이런 행동을 성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성 친구와 함께 노는 아이들은 문제 해결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리처드 페이브스(Richard Fabes)는 “성별로 그룹을 나누거나 활동을 나누는 게 더 빤히 보일수록, 더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켄터키 대학의 발달 심리학자 크리스티아 브라운(Christia Brown)은 아이들이 성별을 근거로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도록, 영유아 생일파티와 스포츠팀에 남녀 차별 없이 모두를 초대하고 함께 활동하라고 조언한다. 성별에 따라 구분을 짓는 언어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 선생님이 “얘들아(Children)” 대신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Boys and girls)”이라고 말하는 경우 아이들의 성적 고정관념과 전통적 성적 역할분담이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였고 이성 친구와 노는 시간이 적었다.

여성 친구가 있는 남성들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볼 가능성이 작다고 포터는 말한다.

상대가 거절했을 때에는 그 거절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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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존중과 허락을 배우는 또 다른 방법: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이 남의 몸을 만질 때는 서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라. 또한 ‘싫어’라는 단어의 힘을 가르치라. 간지럽히고 장난치며 놀다가도 아이들이 ‘싫어’라고 말하면 멈춰라.

건강한 문제 해결 방법을 집에서부터 보여줘라. 이혼과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돼서도 연인 관계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버지니아 대학의 국가 결혼 프로젝트(National Marriage Project) 회장이자 사회학자인 W. 브래드퍼드 윌콕스 (W. Bradford Wilcox)는 말한다.

다른 이들이 편협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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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누군가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라. 또한, 아들과 함께 역할극을 통해 놀림과 괴롭힘을 보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브라운은 권장한다. 

아들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부모는 말을 해야 한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것은 잘못된 행동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아들이 더 좋은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기대하라. “남을 깔보거나 편협하거나 무례하거나 모욕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육할 수 있게 늘 주의해야 한다”라고 킹이 말한다.

‘여자애’ 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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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여자애처럼 뛰네”, “계집애 같아” 등 비하적인 단어나 성차별적인 농담은 하지 말고, 당신의 아들이 말하게도 하지 마라.

 더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성차별과 그러한 단어도 조심해야 한다. 베이츠 대학 소속 사회학자인 에밀리 케인(Emily Kane)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은 아들들이 놀림당할까 봐 아들들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잘할 만한 것을 성별에 따라 우리 멋대로 판단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차별을 없애는 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대학의 뇌신경학자 리스 엘리엇(Lise Eliot)은 남자아이가 여자 같다는 놀림을 받는다면 “아니, 구슬 놀이는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할 수 있는 건데!”라고 대답하거나 “나는 여자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남자보다 여자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것을 추천한다.

책을 많이 읽어라, 특히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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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남자아이들은 과학과 수학에 뛰어나고 여자아이들은 언어와 독서에 두각을 보인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편견은 인간이 그 편견대로 행동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아들보다 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리퍼는 이야기한다. 그러니 아들들과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독서를 장려하며 편견에 맞서 싸우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주인공 소년이 세계를 구하고 여자친구도 구하는 고전적인 이야기보다 딱딱한 틀을 깨고 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또는 고전적인 책이나 뉴스 이야기를 마주치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라: 왜 “유치원에서의 하루”에 나온 엄마는 맨날 실내복을 입고 있고 집 밖으로 안 나갈까? 왜 뉴스에 나오는 건 꼭 나이 든 아저씨들일까?

“고정관념을 매우 잘 발견하고 습득하는 3살쯤 이러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고정관념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이게 당연한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려요.”라고 브라운은 말한다.

소년 시절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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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운다는 건 뭘 하면 안 되는지, 뭘 해도 되는지 온종일 말해야 하고 성적인 차이를 완전히 지워버리려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다. 한 예를 들자면 모든 XY 염색체를 가진 포유동물은 과격한 몸싸움 같은 놀이를 즐긴다고 엘리엇은 말한다.

그러니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고, 농담하고, 운동 경기를 함께 보고, 나무를 타고, 야영장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오라. 남자아이들에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너희들에게는 네 감정을 인정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라. 너희들은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가족을 돌봄으로써 가정을 지킬 수 있음을 알려줘라. 남자에게는 강한 면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불의를 보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강함을 보여줘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열정을 좇는 법을 알려줘라.

페미니즘 용어사전 – 우리가 다 페미니즘을 전공한건 아니니까

출처: http://www.usatoday.com/story/news/2017/03/16/feminism-glossary-lexicon-language/99120600/

온오프라인에서 접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무슨 뜻인지 파악은 못한 단어들을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올라온 신문 기사를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거나 아직 접하지 못한 용어들도 존재합니다. 괄호 안에 덧붙인 설명은 역주입니다.

~기초과정~

Feminism: 페미니즘. 여성과 남성 사이에 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자 갈망.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지난 달 페미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전적 의미를 조금씩 변형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평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가 bell hooks (벨 훅스,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30권 이상의 관련 서적 저자) 는 페미니즘을 “성차별, 성차별적 착취와 억압을 없애려는 운동” 이라고 부른다.

Patriarchy: 가부장제. 남성이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상하구조 사회.

Sexism: 성차별. 성차별주의.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

Misogyny: 여성혐오. (여성을 향한 불신, 불호, 혐오)

Misandry: 남성혐오. (남성을 향한 불신, 불호, 혐오)

 

~심화과정~

Hostile sexism: 적대적 성차별. ‘성차별’ 이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드러내 놓고 모욕을 주며,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함) 비하하는 모멸적인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Benevolent sexism: 온정적 성차별. 적대적 성차별만큼 드러내 놓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하지 않음. 겉으로 보기에는 칭찬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남성의 우월함’이라는 감정에 뿌리를 둔 말과 행동들. 예를 들면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거나 – 배가 침몰한다면 여자가 먼저 구조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여자가 남자보다 선천적으로 더 육아를 잘 한다는 –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 생각과 말과 행동.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제한하며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Internalized sexism: 내제화된 성차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 그 사람의 세계관과 자기 개념의 일부가 된 상태. (한국 온오프라인 사회에서 흔히 개념녀, 코르셋녀 로 불림)

Misogynoir: 흑인여성혐오. (흑인 여성이 겪는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이 겹쳐진 상태)

LGBTQ: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소수성애자(Queer)의 줄임말. Q를 소수성애자가 아닌 퀘스쳐닝(Questioning, 아직 자신에게 질문하는 상태)를 사용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성을 아직 파악중인 사람을 칭하기도 한다. LGBTQIA 라는 비슷한 줄임말도 존재한다. 여기서 I 는 간성(Intersex) 을, A 는 무성애자(Asexual, Aromantic, Agender) 를 뜻하거나 종종  무성애자 대신동지(Allies, 성소수자들를 돕겠다는 사람) 가 들어가기도 한다.

Cisgender: 시스젠더. 생물학적 성별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Transgender: 트랜스젠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그 성별에 대한 성적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

Transphobia: 트랜스포비아.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트랜스젠더 혐오)

Transmisogyny: 트랜스여성혐오. 트랜스포비아와 여성혐오가 혼합된 형태. 트랜스여성과 트랜스젠더, 그리고 젠더 스펙트럼 (Gender spectrum, 직역: 성별 범위) 중 여성성에 가깝다고 정체화하는 젠더 비순응자를  차별하는 양상.

TERF: 트랜스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Trans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의 줄임말. ‘털프’ 라고 읽는다. 트랜스포비아를 가진 페미니스트를 지칭한다.

SWERF: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Sex Worker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의 줄임말. 성매매가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지칭한다.

Gender fluidity: 한 개의 고정된 성별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하지 않는 것.

Non-binary: 여성/남성 혹은 여자/남자라고 정체화 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

Women of color: 유색인종 여성. 백인 여성이 아닌 여성.

Title IX: 타이틀 나인. 미국 연방 연조를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사람들이 성차별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미국 교육조정법.

Victim-blaming: 피해자 비난, 혹은 책임전가. 범죄 혹은 혐오행동 피해자가 해당 범죄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과 말과 행동.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피해자가 무엇을 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런 말과 행동이 바로 피해자 비난이며, 다른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남자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물으면 안됀다고 학대와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한다.

Trigger: ‘트리거’. 트라우마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떤 것. (“trauma trigger”, ‘트라우마 트리거’ 라는 심리학적 개념에서 유래한 용어)

Trigger warning: ‘트리거 워닝’. (‘연상반응 주의’ 로도 번역되어 알려짐) 폭력, 인종차별, 노골적 성행위 묘사 등의 요소로 인해 누군가에게 충격적일 수도 있다고 알리는 경고 문구.  대학에서 이 경고 문구를 사용하는 관습은 아직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주제이다.

Yes means yes: “No Means No” 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섹스는 분명하게 파트너의 동의를 받고 해야 한다는 생각. 즉, 강간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의 전환. (“No means No” 의 직역: ‘”No” 는 “No” 라는 뜻이야.’ 섹스는 파트너가 하기 싫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만해야 한다는 뜻으로, 섹스는 동의를 얻은 후 해야 한다는 캠페인의 캐취프레이즈. 하지만 이제는 파트너가 “Yes” 라고  명확히 말해야 동의를 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

Male gaze: 남성의 시선. 남성적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을 대상화 하는 행동.

Privilege: 특권. 사회 구성인 중 몇몇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Sex positive: 섹스 긍정주의. 파트너의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건강한 성적 표현과 성적 쾌락은 좋은 것이라고 보는 태도.

 

~(영어권) 인터넷 파생~

Bropropriating: ‘브로프로프리에팅’. 여성이 낸 아이디어를 남성이 무단 도용하는 행동. (예: 여성 동료가 제안했던 솔루션을 회의에 들어가서 마치 자신이 생각해 왔다는 듯 남성동료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말할 때.)

Manterrupting: ‘맨터럽팅’ (혹은 맨터럽트). 여성이 말하고 있는데 남성이 지나치게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행동. 예: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을 발표하려고 하는데 칸예 웨스트가 끼어들어 마이크를 빼앗고 “곧 돌려줄께. 하지만 비욘세가 이번에 낸 뮤직 비디오가 역사상 최고야.” 라고 말했던 상황. 또는 2016년 9월 미국 대선토론 중 도널드 트럼프가 첫 26분간 무려 22번이나 힐러리 클린턴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던 상황.  또는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미망인 코레타 킹의 1986년발 편지를 낭독하려하자 연방상원 공화당 대표 미치 맥코넬이 워런 의원을 저지했으나 그 다음날 버니 샌더스의 낭독은 허락한 상황.

Mansplain (verb) mansplainy (adjective): ‘맨스플레인’ (동사), ‘맨스플레이니’ (형용사). 남성이 1)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혹은 2) 상대방보다 더 많이 모르는 상태에서도 잘난 체 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여성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상황. 아, 이미 알고 있었다면 미안.

Manspreading: ‘맨스프레딩’. (쩍벌남) 다리를 넓게 벌려서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행동.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공단은 일명 ‘쩍벌남 근절’ 캠페인을 실행하기도 했다.

Feminazi: ‘페미나치’.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용어.
Woke: ‘우크’. (깨어있다) 흑인 사회운동 문화에 뿌리를 둔 단어. ‘우크’ 한 사람은 특히 사회적 불평등에 관련해서 교육을 받았으며 / 공부를 했으며 의식이 높다는 뜻이다.  하원의원 맥신 워터스(캘리포니아)는 젊은이들에게 “깨어있으라” 라고 말했다. 만약 여성인권의 맥락에서 이 단어를 찾아본다면 경찰폭력에 희생된 흑인여성을 위한 #SayHerName  (그녀의 이름을 불러라) 캠페인을 추천한다.

Woke misogynist: ‘우크 미소지니스트’ (‘여성혐오하는 깬시민’과 비슷한 뉘앙스) 노나 윌리스 아로노위츠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겉으로는 성평등을 외치면서도 뒤돌아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깔보고 억압하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의 남자들을 그려낸다. (해당 기고문) 이런 형식의 여성혐오는 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존재한다. 즉, 페미니스트인 척 하는 사람들.

Emosogynist: ‘이모(emo) 여성혐오자’. 유명 블로그 제제벨(Jezebel) 이 정의내린 바에 따르면 2004년 개봉 영화 ‘가든 스테이트’ 에 등장하는 재크 브레프가 딱 들어맞는다. 감성적이고, 앵스트가 가득하고 페미니스처럼 보이지만 진짜로 뭔하는건 자신들이 맘대로 가지고 놀다 버릴 수 있는 매닉 픽시 드림 걸* 이다.
*매닉 픽시 드림 걸 (Manic Pixie Dream Girl)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타입 중 하나로 발랄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소위 4차원같은 엉뚱한, 늘 밝기만한 단편적 여성 캐릭터를 지칭하는 명칭. 예를 들면 2009년 개봉 영화 ‘500일의 썸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썸머.

Whimpster: ‘윔스터’. (불평불만이 많은 힙스터) 1989년 개봉 영화 ‘금지된 사랑’의 로이드 도블러. 불평불만이 많은 이모(emo) 백인 남성. 자신의 불안함을 이용해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노린다.

~페미니즘 종류~

Intersectional feminism: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와 양성간의 평등을 지지하는 운동이라면,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는 인종,  사회 계급,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 폭 넓고 다양하며 서로 겹치는 정체성이 있음을 이해하며, 그런 상호교차적인 정체성이 개개인이 경험하는 억압과 차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다.

Transfeminism: 트랜스 페미니즘. “자신들의 해방이 모든 여성과 그를 초월하는 모두의 해방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트랜스여성에 의한, 트랜스여성을 위한 운동” 이다. 생물학적 성별과 무관하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여성을 포함하며 시스젠더의 특권에 이이를 제기하는 페미니즘의 갈래.

Women of color feminism: 유색인종 여성이 직면하는 고유의 투쟁을 직시하고 싸우는 페미니즘의 갈래.  상호교차적인 억압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Womanism: 우머니즘.  아프리카 여성의 문화 및 전 세계의 유색인종 여성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관점 변화.

Empowerment feminism: 권한부여 (‘임파워먼트’ 라고도 번역되어 알려짐) 페미니즘. 클럽에서 비욘세의 노래 ‘포메이션’이 나와서 친구들과 정말 재밌게 춤추며 노는 것. 권한부여 페미니즘은 “느낌” 에 강한 중점을 둔다. 몇몇 페미니스트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 사회가 개인의 얼마나 자신표현과 발전을 실질적으로 지지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셰릴 샌드버그의 자서전 ‘린 인’ 또한 권한부여 페미니즘의 또 다른 예시이다. 셰릴 샌드버그는 ‘린 인’에서 여성이 직장에서 어떤 변화를 줘서 더 성공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Commodity feminism: 상품 페미니즘.  상업적 이익을 위해 페미니즘 운동의 이상을 상품과 결합하는 페미니즘의 갈래. 이방카 트럼프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WomenWhoWork (일하는 여성들) 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Equity feminism (conservative feminism): ‘에쿼티 페미니즘’, 보수적 페미니즘. (직역: 공평 페미니즘) 보수 성향단체인 AEI 의 상주학자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가 에쿼티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라고 말할 수 있다. 서머스의 관점에 따르면 “에쿼티 페미니즘” 은 남성과 여성간 법적 평등에 집중하지만 “젠더 페미니즘”은 여성을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늘 규정하기 때문에 여성의 권한을 뺏어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 고문 켈리앤 콘웨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내 자신을 날 둘러싼 환경의 피해자가 아닌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로 본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보수적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물결~

*몇몇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물결”이라는 단어가 페미니즘이 항상 불평등을 싸우고 있지는 않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물결”의 사용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물결”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본다면 크게 다음과 같은 사건을 명시하는 것이다.

First wave feminism: 페미니즘의 첫 물결. 1848년 “여성의 사회적, 시민적, 종교적 환경” 을 논의한 세네카폴스 회의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1920년 미국 헌법 19번이 수정되며 여성참정권을 획득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몇몇 주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유색인종 여성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Second wave feminism: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 1960년대 시작해 1970년대 평등을 더 크게 요구하며 만개했다. 글로리아 스테넘 (Gloria Steinem), 도로시 핏맨 휴즈 (Dorothy Pitman Hughes), 베티 프리단 (Betty Friedan) 등이 대표적인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다. 매우 큰 법적 및 구조적인 평등을 이룩해낸 시절.

Third-wave feminism: 1990년대 시작. 페미니즘을 더욱 더 포용적이고 상호교차적으로 발전하고, 또한 모든 여성이 각자 자신만의 ‘페미니즘’ 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도록 노력 중.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도 빼 놓을 수 없는 이 시대의 멋진 페미니스트 작품!

[NYT / 전문 번역]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주는 인생 충고

원문: Ruth Bader Ginsburg’s Advice for Living (NYT)

원문 게재일: 2016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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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meo

* 글쓴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93년 이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입니다.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며 판사가 되기 전에는 여성 인권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2005년 새라 오코너 대법관 은퇴 이후 유일한 여성 대법관으로 지내는 동안, 미국 랩퍼 ‘노토리어스 B.I.G’에서 가져온 ‘노토리어스 R.B.G’라는 별명이 붙어 인터넷 상에서 일종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항상 판사가 되는 게 꿈이셨나요?” 심지어 더 나아가서는 “항상 대법관이 되는 게 꿈이셨나요?”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법원으로 나를 만나러 오는 학생들에게 그 어느 질문보다도 많이 받는 질문이다. 엄청난 진전이 이뤄졌다는 신호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판사의 꿈을 꾸는 여자아이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로스쿨에 입학했던 그 옛날 1956년 가을과는 전혀 상황이 다른 것이다. 당시 미국 법조계 여성 비율은 3%에 못미쳤고, 연방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여성은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현재 여성은 미국 로스쿨 학생의 절반을 차지하며 연방법원 판사 중 1/3은 여성이다. 거기에는 미국 연방 대법원 3명의 여성 대법관도 포함된다. 미국 로스쿨 학장의 30%가 여성이며 포춘 500대 기업의 최고 법무책임자(General Counsel) 24%도 여성이다. 나의 긴 인생 동안 나는 엄청난 변화를 직접 목도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법적 지위를 헌법의 근본 원칙으로 주장할 수 있으며, 또 이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시대를 변호사로서 살아나갔던 나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페미니스트들이 몇 십년간 추구해왔던 목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에는 남성 페미니스트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까지 우리 사회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역주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73년 대법원이 평등보호조항을 처음으로 여성에게까지 확대 적용했던 Reed v. Reed 사건에서 준비서면을 자청해 작성)

 

나는 어떻게 우리 딸들과 아들들의 길을 가로막는 인위적인 장애물을 없애고 능력대로 각자의 목표를 추구할 자유를 부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을까?  첫번째로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직접 본보기를 보여주시며 독서의 즐거움을 일깨워주셨고, 내게 언제나 “독립적일 것”을 당부하시며, 상황이 어떻던 자기 먹을 몫을 벌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번째로는 성장기 동안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격려해주신 선생님들이 계셨다. 코넬대 재학 시절 유럽 문학 교수님이셨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역주 – 롤리타 작가)는 내가 읽고 쓰는 법을 변화시켰다. 단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분께 배웠다.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적절한 순서로 배치할 때 전달되는 이미지나 생각에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는 걸, 나보코브는 보여주었다.

 

콜롬비아 로스쿨 재학 시절 헌법 및 연방법원 교수님이셨던 제럴드 건서는 나를 꼭 연방 법원 서기로 만들겠다고 고집하셨다. 당시엔 내가 네 살배기의 엄마로 졸업한다는 게 큰 장애물로 여겨졌는 데도 말이다. 그 분의 용맹한 노력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내가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 자주 듣는 질문이 또 있다.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충고가 있나요?” 물론 있다. 삶에 정통하신 나의 시어머니께서 결혼식 날에 전해주신 충고인데, “모든 훌륭한 결혼생활에서는 때때로 약간 귀머거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난 그 충고를 성실하게 따랐다.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56년간의 결혼생활에서는 물론, 대법관을 포함하여 내가 맡았던 모든 직책에도 적용했다.  배려심이 없거나 불쾌한 말이 들릴 때는 정신을 딴 데로 돌리는 게 제일 나았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설득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아버지께서 주신 충고도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남편 마티가 오클라호마 포트실에서 포병 장교로 군 의무복무를 하게 되면서 나는 1954년에서 56년 학업을 잠시 쉬고 있었다. 1954년 말 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55년이면 가족이 3명이 된다는 것이 기대기 되기도 했지만 돌봐야 할 갓난아기를 데리고 로스쿨에 들어가는 게 걱정이 됐다. 시아버지의 충고는 이랬다. “루스, 로스쿨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학업을 중단할 이유는 충분하다. 아무도 너가 그런 선택을 한다고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네가 정말 법을 공부하고 싶다면 걱정은 그만 하고 아이를 돌보며 학교를 다닐 방법을 찾아봐라.” 그래서 나와 마티는 그 충고를 따랐고 학교를 가는 날 동안 아침 8시에서 오후 4시까지 아이를 돌봐줄 보모를 고용했다.

 

일과 가정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말은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었지만 그때 내가 시간을 어떻게 분배했는지 설명하는 데 적절하다. 내가 로스쿨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아기였던 제인 덕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수업을 듣고 오후 4시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 이후로는 제인을 위한 시간이었다. 공원에 가고 유치한 놀이를 하거나 우스운 노래를 불렀고, 이야기 책과 A.A. 밀른(역주 – 위니더푸의 작가)의 시를 읽어줬으며, 제인을 씻기고 먹였다. 제인이 잠들고 나면 나는 의지가 다시 충전된 채로 법학 교과서로 돌아갔다. 내 삶의 각 부분은 다른 부분에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법학에만 집중하던 동기들과는 달리 인생을 분배한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난  꽤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았지만, 마틴 D. 긴스버그와의 결혼에 비할 만큼 운이 좋았던 일은 없다. 나의 총명하고, 활기 차고, 사랑이 넘치는 남편을 적절하게 묘사할 단어를 찾기 힘들 정도다. 신혼 초, 내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자 마티는 주방을 차지하고 우리 집의 ‘요리 대법관’이 되었고, 우리 미식가 아이들(1965년 아들 제임스가 태어나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다)은 이를 감사해 마지 않는다.

 

마티는 아들 제임스를 낳을 때 단계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내가 쓰는 기사와 연설과 준비서면을 첫번째로 읽는 독자이자 비평가였으며, 내가 두 차례 암투병을 하는 동안 병원 안에서건 밖에서건 항상 내 옆에 있어주었다. 마티 없이는 내가 대법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시 백악관 부수석 법률 고문이었던 론 클레인은 1993년 나의 대법관 지명 당시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법관으로 선택되어 마땅한 사람이지만, 긴스버그의 남편이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하지 않았다면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분명히 남겨둔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 “모든 일”에는 나의 고향 뉴욕 주 상원의원인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것과 법조계 많은 이들의 지원을 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맡은 이 직책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 중 최고의 직업인 동시에 가장 정신을 쏟아부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23년 째 말하고 다닌다.

 

대법원의 임무는 연방 법의 충돌을 수정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판단을 내릴 때는 주로 다른 법조인들이  헌법이나 일반 법의 의미를 두고 분열되어 있을 때이기에 우리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보통 쉽지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옳은 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모여 추론하고, 결정문 초안을 돌리고 응답함으로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리기 보다는 서로에게 동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법관이 다수의견이 틀렸다는 확고한 시각을 갖고 있을 경우에는 자유롭게 소수의견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다. 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되면 이런 특권을 사용하며, 동료 대법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선거 비용 규제나 차별 철폐 조치, 낙태권 등의 주요한 사안에서는 의견이 크게 갈리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서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협력은 우리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필수적이다. 우리가 만약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대로 “넘어가지(get over it)” 않는다면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의 임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아까 나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엄청난 변화를 목도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아직도 상황에 암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고, 여성들의 소득은 비슷한 교육과 경험의 남성들보다 적으며, 직장들은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사항들을 제대로 맞춰주지 않고, 아직도 직장내 성폭력과 가정 폭력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은 개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인민(We, the people)”(역주 – 미국 헌법을 시작하는 구절)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리라고 낙관한다.

 

 

[Humans of New York] 힐러리 클린턴의 ‘벽을 치는 태도’, 왜 생겼을까

  • ‘뉴욕의 사람들(Humans of New York)’은 뉴욕 시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블로그로, 2010년 사진작가 브랜든 스탠튼(Brandon Stanton)이 시작했다. 9월 9일’뉴욕의 사람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뉴욕 주 상원의원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의 인터뷰가 등록됐다. 아래는 클린턴 인터뷰 (1, 2)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하버드의 커다란 강의실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시험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강의실 전체에 여자라고는 저와 친구 하나 뿐이었죠. 긴장이 됐어요.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시험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남성 무리가 ‘넌 여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라던지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많잖아.’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 쏟아내는 분위기였죠. 한 사람은 심지어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하면 난 징집당해서 베트남에 갈 거고 난 죽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냥 장난을 치던 게 아니었어요.아주 심각한 분위기였고 매우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상황이었어요. 그렇지만 대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릴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저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감독관이 들어오기를 바랬죠. 제가 냉담하고 차갑고 무정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젊은 여성 시절 제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어요. 그건 쉬운 길이 아닙니다. 침착함을 유지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벽을 치는 것처럼(walled off)’ 보이지 않아야 하니까요. 제가 ‘벽을 친 듯한’ 영역에 있는 것처럼 느끼실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그런 느낌을 만든 책임은 저에게 있죠. 전 제가 차갑고 무정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제 친구들도, 제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때때로 제가 그런 느낌을 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여긴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겠죠.”

 

“저는 버락 오바마가 아닙니다. 빌 클린턴도 아닙니다. 이들은 둘 다 청중들을 매혹하는 자연스러움을 몰고 다니죠. 그러나 둘 중 한 명과 결혼하고 다른 하나와 같이 일을 해봤기 때문에 둘이 자연스러움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 지 알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움은 그냥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특성이 아닙니다. 둘도 노력을 하고 말할 것을 연습하죠. 다른 사람인 척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대한 근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이 ‘그래,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라고 느낄 만한 방식으로 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 일이 남성들보다 더 어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성 모델이 없기 때문이죠. 상원의원이나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할 때 대부분의 롤모델은 남성이 됩니다.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효과가 있는 방식이 우리에겐 효과가 없습니다. 여성들은 다른 렌즈를 통해서 관찰됩니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입니다. 꽤 웃길 정도입니다. 이런 저런 행사에 가보면 저보다 먼저 발언하는 연사들이 메시지를 공격적으로 전하고 이 선거에 꼭 이겨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열광하죠. 그리고 저도 똑같이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에게 중요한 문제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그들처럼 열변을 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죠. 저는 팔을 흔드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약간 무섭게 느껴지나 봐요. 소리도 너무 크게 지르면 안되죠. ‘너무 시끄럽다’던지 ‘너무 새되다’던지 아무튼 ‘너무 이렇다’ ‘너무 저렇다’고 느껴지니까요. 재밌는 일이에요. 전 항상 앞줄에 있는 사람들은 연설을 즐기고 있다고 확신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