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칼럼 – 남자들에게, 당신도 포함해서.

원제: Dear Men: It’s You, Too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9일

*이 칼럼을 쓴 록산 게이는 퍼듀 대학교의 부교수이자 “나쁜 페미니스트”, “배고픔” 등 다수의 저서 작가

성폭력 관련 통계는 언제 들어도 소름끼치지만 그런 설명마저도 여성이 대면해야 하는 성폭력/성폭행의 진정한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 페미니즘 담론에서 우리는 ‘강간 문화’ 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이런 담론을 나눠야 하는 사람들, 즉 문제의 원인이 되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위해 변명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여자들은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는 그 개념조차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여자들이 히스테리 부리는 거야, 또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네.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어? 여자가 옷을 더 제대로 입고 다녔어야지, 행동을 똑바로 했어야지. 그걸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해?

회의론자들은 모든 말과 상황과 팩트를 어떻게 해서든지 비틀어서 여자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와중에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남자 – 유명하지만 사무치게 평범한 그런 남자들 –  가 성범죄자로 밝혀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나 다 공공연하게 알고 있던 그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고 국제적인 뉴스가 된다. 징그럽고 웃기지도 않은 범죄의 디테일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그 누가 다시는 목용용 가운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자신들이 경험했던 성폭력과 성추행을 알리고 있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이 순간 이 상황이 ‘이것이 나의 짐이고, 이것이 여성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다’ 라는 우리의 증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쳤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이제는 남자들의 차례다.

나는 성폭행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레벨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성폭력에 대해 몇 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말해왔고, 집필해 왔고, 트위터에서 활동해 왔다.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머리 끝까지 침식되어 있지만 이렇게 해야만 언젠가는 ‘강간 문화’ 라는 문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구식 개념이라고 우리 언어에서 추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해 왔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더 밝은 미래를 향해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특히나 악의는 없는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강간 문화를 수용할 때 더 멀어진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 중 나쁜 남자는 일부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남자가 없을꺼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로 그런 나쁜 남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추행은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실리콘 밸리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믿고 싶어한다. 성추행은 모든 산업, 모든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의 부적절한 의도와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좀 더 상냥하게 말했다거나, 술을 덜 마셨거나, 옷을 더 얌전하게 입었거나 웃어줬다거나 감사의 뜻을 표하거나 등등 여자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성폭력과 성추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남자라서 어쩔 수 없고, 남자들은 살살 구슬려야 하고, 성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이 더 제대로 행동했다면 이런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도 주장한다. 만약 여자가 옷을 더 얌전한 스타일로 입는다면 개성있는 외모를 감사하게 생각했다면, 혹은 도나 카란의 말을 빌리자면, “관능적이고 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이러한 배신 하나하나가 쌓일 때마다 여성 전체가 짊어진 짐은 더 무거워진다.

성폭력과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매번 반복되는 이러한 답변과 논리는 어떤 여성도 원치 않는 남성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를 마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든지 안 맞든지, 긴 옷을 입든지 짧은 옷을 입든지 원치 않는 관심을 받지 않는 일은 없다. 운이 좋은 여성들이 그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뿐이다.

성폭행은 언제나 ‘권력’ 이 그 중점이다. 물론 성적인 요소도 있지만, 성폭력은 누군가가 자신이 우위을 선점하고 있으며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다면 보편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성폭행을 경험한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을 무시하고, 목소리를 빼앗고 그들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성폭행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라며 축소시키는 여성들이 있다. 그냥 길을 걷다가 좀 야유를 당한거야. 그냥 어떤 남자가 좀 만졌을 뿐이야, 벽으로 밀치고 자기 몸으로 눌렀을 뿐이야. 그냥 강간 당했을 뿐이야. 무기도 하나도 없는 맨 손이었어. 10 블락 정도 따라오더니 그냥 돌아가던걸. 멍도 몇 개 안 들었어.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어. 내가 이 나라에서 당하는 그 어떤 일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나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 우리는 마치 후크송의 후렴부 같이 이런 말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들려준다. 왜냐하면 이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정말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단 1초도 더 이 짐을 짊어지고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일어난 후, 추잡한 개인 메세지를 보낸 이부터 강간까지 다양한 성폭행을 저지른 미디어 쪽 남자들의 목록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록은 나타났던 것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 목록을 봤다. 그 중 몇몇은 성적인 폭행을 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록에 올라오면 안 될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몇몇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사회적인 망신도 당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 목록은 미디아의 영향력이 약한 인디아나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도 이미 알려져 있는 악행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쁜 남자들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은 정말 많다.

그 목록 퍼져나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명예회손이니 익명 고발의 도덕성이니 하는 걱정들이 많았다. 이런 나쁜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입는 “착한 남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덧붙여 더 “약한” 성폭행이 더 질 나쁜 성폭행과 함께 있어서 나빠 보인다는 걱정도. 마치 여성들은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할 능력이 없으며 상황에 알맞은 태도인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감내해 온 고통보다 이 목록이 남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붇고 있었다. 사회는 자신들이 만나 온 나쁜 남자들을 걸러낼 수 있게 지금까지 입으로만 서로 정보를 교환하던 여자들이 이제 가시적인 목록을 만들자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Metoo 해쉬태그를 보자.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을 공유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말한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해봤어, 나도, 나도. 미 투.  나도 참여할까 고려했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지쳤다. 나는 이미 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공격받고 상처를 받았다고, 내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데 지쳤다.  너무나 아파서 이제는 아픈 것이 아픈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들이 뭔지 알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공개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계속 공유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특히 남자들은 성폭력이 이렇게 만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반응한다. 이들은 모를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패닉해서 모든 남자들이 성 범죄자가 아니고 자신들은 그렇게 일반화 당하고 싶지 않으며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픈줄 안다고 말해댄다. 남자들은 너무 많은 남자들이 성범죄자이며 여자들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성폭행 목록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너무 당황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하며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라고 묻는 남자들이 존재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남자들도 여자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며 해왔던 일을 함께 하면 된다. 남자들도 이제 앞으로 나서 “나도” 라고 말하며 여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일을 공유하면 된다. 남자들은 이제 좁은 사무실 복도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여자들을 코너로 몰아넣었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 어떤 외설적인 말을 했는지, 여자들이 싫다고 거절했을 때 그 대답을 듣지 않고 죄책감을 가지게 해서 결국 섹스를 강요했는지 등을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성폭력을 행사할 때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 모른 척 방관했는지,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웃어 넘겼는지 아니면 몰래 속으로 그 여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는지 – 말하면 된다. 이젠 남자들이 해답을 찾을 차례이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지 않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에 지쳤다.

[NYT] 칼럼 – 하비 와인스타인은 갔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문제는 남았다.

원제: Harvey Weinstein Is Gone. But Hollywood Still Has a Problem.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1일

*이 칼럼을 쓴 마놀라 다기스는 1987년부터 영화 평론을 시작했으며 현 뉴욕 타임즈 영화평론 공동 국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여성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가 부상하는 것을 읽고 내게 든 생각은 ‘뭐, 당연한 일이군’이었다. 와인스타인은 우쭐대는 골목대장 스타일로 유명하고, 와인스타인 밑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특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들은 바는 없지만 이런 행동은 영화산업에 널리 퍼진 끈질긴 여성 착취에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이후 10일 뉴욕타임즈는 이탈리아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아시아 아젠토를 포함해 3명의 여성들이 와인스타인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말하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즈의 와인스타인 탐사보도를 본 후엔 더 없는 혐오감이 들었지만, 뉴요커의 기사를 읽곤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여성들이 경험한 성폭력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때로는 추악했고 때로는 황당했던 나의 여러 경험도 떠올랐다. 뉴욕에서 어떤 감독을 인터뷰하던 중 그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확 기대오기 시작한  때도 있다. 나는 몸을 빼낸 후 침착하게 말을 계속해나갔다. 그때 나는 그 감독을 보편적인 남성 성차별주의자로만 생각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특유의 행동이라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냥 자기 권력을 여성에게 휘두르려는 또 다른 남자구나 싶었다. 이건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감돌고 있는 것은 뒤틀리고, 끈질기며, 당연하다는 듯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형 성적 착취와 폭력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의 보편성은 미국 영화 산업 전반에도 만연하다. 영화 산업을 쌓는 데는 여성의 도움이 들어갔으나 할리우드는 언제나 구조적으로 여성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남성 중심적 산업이었다. 할리우드는 역사적으로 어린 여성 예술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유통기한을 메겨왔다. 여성 감독 기용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오만하게도 여성 관객을 틈새 시장, 골칫거리,  나중에 가서 대충 맞춰주면 되는 상대로 취급해온 산업이기도 하다.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와인스타인에게 입은 피해를 고백하고 나선 건 너무나 고무적이다. 그러나 와인스타인은 이례적인 인물이 아니다. 와인스타인은  구조적 성차별의 일반적이고 악독한 증상일 뿐이다.  그를 용인해와놓고도 지금 와선 어깨를 으쓱하며 이 사건을 넘겨버리고 괜히 여성들에게 더 먼저 말하지 그랬냐고 묻는 모든 이들도 구조적 성차별의 증상임은 마찬가지다.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건 여타 산업이건 존재하는 다른 가해자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가 한때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고 피해자 중에 여러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포로 움직이는 산업, 침묵이 방패이자 무기이고 일을 얻는 조건인 할리우드를 일깨우는 강력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할리우드의 침묵은 역사적으로 영화 만드는 남자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남자들 중에는 루이스 B. 메이어 같은 이전 세대의 스튜디오 수장들이 있다. 와인스타인은 종종 추억 어린 눈길로 이런 거물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과거에 스튜디오 수장들은 우아하게도 ‘호색한(womanizer)’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런 예의 바른 비유법 속에는 ‘캐스팅 쇼파에서 보내는 시간’-역겨운 완곡어법을 하나 더 들자면-에서부터 성매매나 다를 바 없는 행위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어의 이름을 땄고 하늘보다 더 많은 ‘스타’를 자랑했던 제작사 메트로-골드윈-메이어는 “여러 임원 사무실 내에서 돌리는 용도인 ‘6개월 옵션녀’라고 알려진 여성들”이 있었다고 역사학자 스콧 아이먼은 말한다.

이런 일들이 뭐랄까, 평범하게 느껴진다면,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리 저리 돌리는 천박한 일면은 할리우드의 역사, 전통, 그리고 정체성 그 자체에 깊숙히 엮여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할리우드에 와서 스크린테스트를 받고 잘하면 계약을 하게 된다. 그 뒤에 나오는 얘기는 지겨울 정도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생생하다. 회사는 머리를 금색으로 염색시키고, 약을 먹이고, 다이어트를 시키고, 몸에 칼을 대게 한다. 운이 좋으면 마릴린 먼로(또는 그 시대의 ‘잇걸’)이 되고, 운이 더 좋으면 살아서 할리우드를 빠져나간다. 다른 이들은 이리 저리 돌려지는 여자로 남는다. 옛 시대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성 착취가 영화 산업의 일부가 되려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태도-야, 여기 할리우드야-는 살아남았다.

와인스타인의 커리어에는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이 있다. 1980년대 인디영화 판에서 부상하던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초기 회사 미라맥스를 골리앗 같은 주류 미디어 그룹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이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같은 미디어 공룡 기업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단조롭게 주판알을 튕기던 미디어 기업의 시대에 미라맥스는 활력과 신비한 분위기가 넘쳤다. 무엇보다도 미라맥스는 일약 스타덤에 오를만한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 배우들과 락스타 같은 남성 영화 감독(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와인스타인이 가끔 가다 누군가에게 (말 그대로) 펀치를 날리기는 했지만 할리우드에서의 실수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박스오피스의 성공과 매끈한 PR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 잡지 프리미어의 에디터였던 피터 비스킨드는 1991년에 와인스타인을 파헤치려 했지만 미라맥스가 광고를 빼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 다음에 알게된 사실은 와인스타인이 프리미어에 컬럼을 쓰게 됐고, 내가 와인스타인의 에디터가 됐다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언론의 약점을 꽉 틀어쥘 수 있었던 이유는 쌍방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와인스타인은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을 돕는 여성들을 도왔다. 2007년 와인스타인은 시민단체 ‘영화 속 여성(Women in Film)’이 주최하는 크리스탈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해 미라맥스 영화 <시카고> 등에 출연한 르네 젤위거에게 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와인스타인에 대해 밝혀진 사실들을 볼 때 와인스타인의 회사들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제인 캠피온 감독(<피아노>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주디 덴치(<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은 중년 여배우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건 진보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머리를 잘 굴려 옛 시대 스튜디오 스타일의 상품 다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보자면 와인스타인과 그 동생 밥 와인스타인이 여성에게 기회를 줬던 건 여러 종류의 영화를 개봉했고 또 모든 자원을 성공공식을 따르는 영화(그리고 남성 중심적 슈퍼 히어로 영화)에만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HBO 시리즈 <걸즈>의 공동제작자인 제니 코너는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나중에 돌아보면서 ‘그때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지’라고 회상할 순간”이라며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너의 말이 맞기를 바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멜 깁슨의 사례에서 보듯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자들을 너무나 잘 용서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땅바닥에 엎어진 동료에게 눈길을 주긴 하지만 다음 미팅에 가는 길에 밟고 지나가려는 목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동료가 어떻게든 다시 재기한다고 할 때 할리우드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냐고 물을 것이다. 이런 용서는 종종 사업에 중요한 것은 돈뿐이라는 익숙한 대사와 연결된다.

돈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영화 산업의 가장 역겨운 행태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여자, 흑인, 기타 등등을 쓰지 않는 이유는 돈이 안되서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은 할리우드를 좌파라고 보고 내부인들은 진보적 대의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영화 산업은 근본적 보수주의 원칙을 따른다. 이 보수주의가 서사 재활용, 여성(그리고 남성)의 성 착취, 남성 중심적‧백인 중심적 체제 유지를 조형한다. 에이바 듀버네이와 레나 던햄(던햄의 와인스타인 사건 관련 칼럼 전문 번역을 보시려면 여기로)와 같은 혁신적 인물들의 압력에도 영화 산업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내려놓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의 혐의 부상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영화 산업을 바꾸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번 사건은 그 압력의 일부다. 할리우드 내외의 운동가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할리우드의 편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기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영화 내 다양성과 관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LA타임즈에 따르면 시민단체 미국시민권연합(ACLU)의 촉구로 미국 연방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2015년부터 TV 및 영화의 여성 감독에게 접촉해 고충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성차별과 매일 싸워야만 하는 할리우드의 여성들을 위해 실질적인 변화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내가 변화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는 둔탁하고 유해한 고정관념(streotype)과 서사적 클리셰와는 다른 새로운 목소리와 비전이 영화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애호가를 위해서도 변화는 필요하다. 나는 내 일생 동안 영화에 대한 모순적인 사랑 속을 헤맸다. 영화 속에서나 그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너무나 자주 영화에 드러났고, 나는 영화의 여성혐오와 영화가 주는 기쁨 간에 갈등했다. 영화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기만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분노할 때이기도 하다.

[NYT] 레나 던햄 칼럼 – 하비 와인스테인과 남성들의 침묵

원제: Lena Dunham: Harvey Weinstein and the Silence of the Men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9일

 

나는 23살에 할리우드로 갔다. 저예산 영화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에이전트를 구하고, TV 계약을 따냈다. 모두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을 동화 같은 성공이었고, 23살의 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저런 미팅을,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처럼 기뻐하며 돌아다녔다.

이런 미팅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과 이루어졌고 일상적인 성차별 행위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소규모의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할 거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여성들의 생리 주기가 겹쳐 한 주간 미쳐 돌아가는” 코미디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하고, 내가 “섹시한 여자랑 짝을 이루면 진짜 재밌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지나치게 길어졌고, 업무상 점심 자리가 영화사 임원의 파탄난 결혼을 고백하는 자리로 바뀌는가 하면, 내가 내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침대에서 뭐든 해주는” 여자가 아니냐고 계속 우기기도 했다.

나는 이를 견디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 새로 만든 친구이자 지금은 업무상 파트너가 된 제니 코너네 집 쇼파에 앉아 그 날 겪은 불합리함을 털어 놓곤 했다. 코너는 나에게 자신이 사다리를 오르며 겪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우리는 우리끼리 새로운 세상을 계획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세트장, 나대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임금을 낮춰 주는 건 꿈도 못꾸는 남성들, 보이는 곳 끝까지 여성들이 가득찬 회사,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대본을 쓸 기회를 꿈꿨다. 그걸 섹스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남자들에게는 가서 신발이나 쳐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남성들은 (예를 들어 주드 애파토우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덜 더러운 남성이다) 우리를 전적으로 존중했다. 내가 감독에 관해 끔찍하게 분노했던 건 어떤 게이 남성이 나한테 사준 지갑을 다시 가져가라고 했을 때뿐이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지난 한주간 하비 와인스테인이 수년간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여러 보도를 통해 할리우드의 모든 여성이 우리와 같은 길을 겪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게 분명히 밝혀졌다. 사업이나 예술을 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학대와 위협, 강요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와인스테인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질 남성들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일 지는 모르지만, 와인스테인 외에도 처벌을 받지 않고 날뛰던 가해자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십년간 그의 회사에 근무하거나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행동을 용인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시초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축소판이며, 전지구상의 여성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소유하고 침묵시키는 일은 영화 세트장만큼이나 페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일어나고, 할리우드는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용납하면 안되는지 시끄럽게 선언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좌파 쪽으로 기우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로저 에일스 (성희롱 혐의로 고발 당한 보수 매체 폭스 뉴스 창립자), 빌 오레일리(성추행 혐의가 불거져 퇴사한 폭스 뉴스 전 간판 앵커)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주저 없이 비난해왔다. 우리는 성폭력이 “락커룸 대화”일 뿐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어디도 아닌 할리우드의 인물이 여성을 모욕하고 정신적 충격을 입히는 끔찍한 취향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은, 특히 남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단 말인가?

이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아직도 가장 핫한 젊은 스타들과 작업하고 있다. 그는 부정했지만 앨런의 딸은 어릴 때 앨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는 적극 구명해야 할 선구적인 인물로 비춰지며, 최근 한 남성 스타는 나에게 폴란스키와의 작업은 “궁극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기소를 중지하고 미국 복귀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촉구하는 할리우드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도 와인스테인이었다.)

이런 거물들을 제쳐놓고도 할리우드의 남성들은 아직도 나쁜 행동을 무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여러 피해자로부터 직접 디스토피아 그 자체로 보이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나는 작년 내가 출연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감독에게 세트장이 아닌 곳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높은 자들의 반응은 감독을 옹호하고, 여성을 집요하게 취조하고, 그를 해고하기 전까지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 거였다.  감독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고대의 우정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 이런 권력 남용의 ‘정상화(normalization)’는 바로 그런 식의 행동에 기반을 둔다.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데다 의심의 여지 없이 끔찍한 와인스테인의 혐의는 논박도 무시도 불가해보인다. 나는 순진하게도 여태까지 할리우드의 영향력 큰 남자들이 보여온 침묵, 진실공방 속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집단적인 선택은 와인스테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무너져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내가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남성들은 잃을 것이 적고, 서사를 뒤집을 만한 힘이 많은 데다 이런 혐의를 둘러싼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일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와인스테인과 작업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있다. 와인스테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선물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영화 산업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기횐데도 말이다. 여성들에겐 우리가 이런 권력 남용은 물론 이런 행동의 원동력인 여성 혐오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2016년 가을, 나는 와인스테인컴퍼니에서 주최한 힐러리 클린턴 자선 행사에서 공연했다. 루머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의 후원 하에 공연을 하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너무나 돕고 싶다는 계산 끝에 참여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저런 계산을 했고, 그런 계산에 대해 사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 그리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는 데 꼭 필요한 입장 변화다. 나는 우리 산업의 여성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누군가와 악수를 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뭐가 미안한가? 더 이상은 어떤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가? 공백을 메우고 기준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당신은 무엇이 두려운가? 소문을 듣고서도 맡았던 어떤 역할이나 위원회 자리인가? 샴페인 한 잔? 등을 두드렸던 것? 와인스테인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찍혀서, 아니면 당신의 단체에 와인스테인이 기부를 해서, 혹은 당신에게 여자친구를 소개 시켜주거나 오스카 상을 받도록 도와줘서 부끄러운가? 혹시 정말 슬픈 일이지만 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 하에 살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성폭력 가해자라는 걸 알면서도 고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고객들을 그런 감독들의 세트장으로 밀어넣는 에이전시의 문제다. 달갑지 않은 문제를 묵과한 제작자들의 문제이며, 떠도는 소문을 들었지만 <판타지 풋볼>을 하러 자기 트레일러로 돌아갔던 배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비 와인스테인의 축복을 받는 위치를 잃을까봐 알아낸 정보를 보도하지 않았던 영화 산업 언론의 문제다. 일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얘기를 드러내기 두려워했던 여성들, 와인스테인에게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던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침묵, 특히나 와인스테인과 가깝게 지냈던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이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 문화를 공고히 할 뿐이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리 없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을 묵과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를 여기로 이끈 바로 그 길에 남게 된다. 소음을 일으키는 게 곧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게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다. 우리는 더 이상은 이런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더 크게 말해라.

[Economist] 구글은 다모어에게 어떤 답장을 보냈어야 했는가

래리 페이지가 제임스 다모어에게 보냈어야 했던 답장

원문: The e-mail Larry Page should have written to James Damore (Economist)

 

지난 주 <이코노미스트>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 CEO가 구글 사내에서 공유돼 빠르게 퍼져나간 반다양성 메모에 대해 “자세하고도 울림이 있는 반박”을 썼어야 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염두에 두었던 적절한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 2017년 8월 15일 15:15 (1초 후 도착)

보낸사람: 래리 페이지 <*********@google.com>

받는사람: 제임스 다모어 <***********@hotmail.com>

참조(cc): 구글 전 직원 <all-staff-worldwide@google.com>

제목: Re: “구글의 이데올로기적 반향실”

 

제임스에게,

 

아마 제가 여성과 남성은 평균적으로 능력, 성향, 관심사에 전혀 차이가 없다는 말로 이 편지를 시작할 거라고 예상하셨을 겁니다. 아니면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남성이 여성보다 네 배 많다는 사실이 차별의 증거라며 말문을 떼던가요. 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연구들이 평균적인 여성과 평균적인 남성 사이에 수십여 개의 차이가 있다고 뒷받침합니다. 순전히 논리로만 보자면 우리 회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남녀 비율이 그 자체로선 여성혐오나 성차별의 증거가 아니라는 당신의 주장이 맞습니다.

당신이 젠더 다양성과 공정성을 지지한다고 명시하신 것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당신의 글은 “나는 다양성과 포용을 중시하며,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는 것도 아니며, 성이나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에 찬성하지도 않는다”로 시작하니까요.

제임스 다모어의 트위터 계정(@Fired4Truth)의 프로필 사진

그러니 제임스 당신과 이 편지를 읽는 다른 직원들은 이게 대체 무슨 문제인지 이해가 안갈 수도 있을 겁니다. 대체 왜 이 글이 그렇게 빨리 퍼졌을까, 왜 이걸로 그렇게 난리들일까, 왜 해고를 했을까 궁금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여러 인터뷰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칼럼을 통해 그건 구글이 “이념에 의해 움직이며 과학적 논의를 용인하지 못하는” 회사라 당신의 “합리적이고 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실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실 때문에 해고됨(@Fired4Truth)’이라는 트위터 계정과 ‘굴라그(역주 – 구글의 철자를 뒤바꿔 소련 강제 수용소를 연상케 한 것)’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프로필 사진은 당신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하는 듯 하군요.

당신은 틀렸습니다. 당신의 글은 자신이 믿는 바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아다니는 ‘귀인 편향(motivated reasoning)’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속한 IT 산업을 비롯해 모든 분야의 여성들에게 모욕적인 글입니다. 말로는 다양성과 공정성을 지지한다고 해놓고는 엄청난 편견을 내비칩니다. 당신의 추론 단계는 빠진 고리가 너무 많아서 무슨 자료를 바탕으로 하건 상관이 없을 정도입니다. 구글은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과 관계 없이 진실을 쫓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려 합니다. 당신의 경우 우리가 잘못 채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왕좌의 게임> 중 존 스노우의 대사 ” ‘하지만’ 앞에 나오는 모든 말은 똥덩어리야.”

혹시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는 걸 느끼신 적 없나요? 왜 그런지 <왕좌의 게임> 존 스노우의 말을 빌려보도록 하지요. 7 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산사 스타크가 존 스노우에게 “그들은 오빠를 존경해, 정말이야. 하지만…”이라고 말하자, 스노우는 웃어넘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 ‘하지만’ 앞에 나오는 모든 말은 똥덩어리야.”

당신의 글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그 대사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편견과 기술, 직장을 경험하며, 우리는 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모든 걸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평균적인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성과 공정성을 존중한다는 당신의 말은 모두 저 엄청난 “하지만” 앞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당신은 남성과 여성의 몇 가지 차이를 묘사하고, 그게 대다수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남성인 이유라고 주장하며, 성비를 변화시키려는 구글의 노력이 여성에 대한 공정함 아니라 반남성적인 편견이라고 불평합니다. 당신은 ‘차별한다(discriminate)’와 ‘차별(discrimination)’이라는 단어를 이 글에서 17번 사용하는데, 모두 남성이 피해자라는 맥락에서 사용합니다.

다모어가 주장하는 정규 분포 도형 – 평균은 비슷하지만 극단은 한쪽 집단의 인원이 더 많다.

당신의 글이 실제로 무슨 내용인지를 밝혔으니 이젠 그 주장을 검토해보도록 하죠. 당신이 인용하는 남녀의 주된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사람들에게 관심이 더 많고, 사물에는 관심이 덜하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체계화”보다 “공감”에 능하고,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 남에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불안 수준이 높고 스트레스 내성이 낮다. 당신의 주장은 남녀 두 집단은 평균만 살짝 다를 뿐 거의 동일한 두 개의 정규 분포 도형을 그리지만, 정규 분포 끝부분에 위치한 ‘아웃라이어’들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 팀에서 친절하게 절 위해 더 평균이 높은 분포 ‘꼬리’ 부분을 강조한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이 단순화된 모형을 보면 특정 변수에 대해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을 모두 모으면 그 중엔 평균이 더 높은 집단에 속한 인원이 훨씬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 체계화 능력 대비 공감능력에서 남녀가 집단적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 다음, 이와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 남성과 여성의 프로그래밍 능력 차이로 건너뜁니다. 딱 꼬집어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여겨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추론에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 주장의 첫 번째 오류입니다. 제 눈에는 오류가 적어도 여섯 개는 더 보입니다. 각각 단독으로 있어도 당신 주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오류들입니다.

첫 번째로, 당신은 결론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이는 소수의 남녀 차이를 바탕으로 주장하면서 다른 많은 남녀 차이를 무시합니다. 두 번째로 당신은 남녀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원인들을 무시합니다. 세 번째로 당신이 인용하는 남녀 차이는 국가별, 시기별로 달라집니다. 네 번째로 그 차이가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구성요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요. 다섯 번째로 당신은 구글이라는 회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구글이 채용과정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으시네요. 여섯 번째로 만에 하나 당신 말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더 적합하다 해도, 여성을 더 많이 채용하려는 노력이 남성에게 내재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귀인 편향’의 승리입니다. 동전 앞면이 나오면 남성의 승리고, 동전 뒷면이 나오면 여성의 패배라는 식입니다. 당신이 언급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차이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남성은 분노 수치가 높고 협력 능력과 자기 절제 능력이 떨어집니다. 만일 그 반대였다면 당신은 분명 여성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부적합하다는 증거로 인용했을 겁니다. 당신은 남녀의 능력과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와 성격 쪽에 치중하는 데, 아마 전자는 당신의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 국가에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거의 전 과목에서 더 우수합니다. 이것도 역시 그 반대였다면 당신이 언급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찾을 수 있는 남녀 코딩 능력을 비교한 유일한 논문은 여성이 남성보다 깃허브GitHub(역주 – 개발자 협력툴) 기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프로젝트 외부자일 경우엔 성별이 알려지지 않아야만 그런 결과가 나왔죠.

실리콘밸리에서 여성들이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겪는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지난 12월 수전 파울러가 우버를 퇴사하기 전 자신이 경험한 사내 성폭력을 설명한 글을 읽어보세요. 최근 IT 분야 여성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실리콘밸리의 코끼리(역주 – ‘방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을 비튼 것. 모두가 인지하지만 말하지 않는 문제라는 뜻)” 설문조사를 보세요. 응답자 3분의 2가 성별 때문에 인맥을 쌓는 기회에서 배제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은 IT 산업을 넘어 전반적으로 알짜 업무를 맡을 확률이 떨어지며, 유용한 피드백을 덜 받게 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뻔뻔하다고 여겨집니다. (남성들은 진취적으로 여겨지는데도요.) 여성이 관리자를 맡을 경우 능력 있다고 비치거나 호감이 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능력 있어 보이면서도 호감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신은 “남녀 격차가 성차별을 암시한다고 간주하는 건 그만 두어야 한다”고 쓰셨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압니다! 굳이 남녀 격차에서 성차별의 존재를 읽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말대로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차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동물들도 그런 남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의 경우 특정 차이가 선천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인간 사회는 동물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차이가 극명하니까요. (딴 얘기지만 당신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일부 보수층은 진화론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건 블랙 유머에 가깝네요.)

당신이 인용하는 특정 남녀 차이가 진화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성인 남성과 남자 아이들에게만 마케팅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학 컴퓨터공학 전공생 중 여성 비율은 지금보다 높았습니다. 여성 컴퓨터공학자 비율은 국가별로 차이가 큽니다. 성격적 차이조차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일례로 위계가 강한 국가에서는 남성들이 친화성(심리학적으로 겸손, 이타심, 배려 등의 특질을 포함한 용어)이 더 강하고 야망과 승진욕은 덜합니다. 그렇다는 건 미국에서 나타나는 일부 남녀 차이는 여성들이 아직도 상대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렇듯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끼리만 경쟁을 하는 분야에서는 소위 ‘여성적’ 특질들은 사라져버립니다. 소프라노와 발레리나들이 누가 탑이 되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사람은 절대 없을 겁니다.

당신이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구성요건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역도선수나 체조선수의 경우라면 문제가 간단합니다. 당신처럼 양식화된 정규 분포 도형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힘이 세고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더 유연합니다. 그래서 최상위권 역도선수는 남성, 최상위권 체조선수는 여성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일차원적인 직업은 드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사람’도 ‘사물’도 포함되는 광범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팀워크 능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혼자 일하는 괴짜 프로그래머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수석 엔지니어로 올라가면 팀을 운영해야만 합니다.)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비율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이런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겁니다.

당신이 내비치는 프로그래머에 대한 그런 편견은 우리가 일하는 IT 분야에서 여러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팀워크 부족과 제품 테스트 실패 때문에 신규 공개된 제품이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많고, 여러 프로젝트가 기한과 예산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개발 단계에서 여성 인력 참여가 부족해서 제품이 실패한 사례를 들 수도 있습니다. 구글플러스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용자들은 가입하려면 자신의 성별을 표시해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당신과 사진을 공유했습니다”처럼 성별을 표시하는 알림을 쉽게 보내려는 의도였습니다. 개발에 참여한 사람은 전부 남자였고,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에서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를 꺼린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겁니다.

이런 실패는 단순히 IT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IT 기술은 현대인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글이 인류 상당수에게 잘 맞지 않는 가상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동차 좌석과 회사 책상이 대부분 여성들에게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널리 사용되는 약 중에서 남성에게만 시험되는 약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마지막으로 여성 채용을 확대하려는 구글의 시도가 남성 차별이라는 견해를 살펴보죠. 당신은 채용과정에서 지원자의 성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적절한” 남녀 비율로, 그러니까 채용 풀 중 재능 있는 지원자 비율에 비례하는 쪽으로 수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부 여성들은 남성 중심 문화 때문에 지원을 꺼리게 될 겁니다. 인사담당자들은 남성 중심 환경에서 확립한 고정관념에 비춰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게 될 거고요. 당신은 “사람들을 소속된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개인으로 다뤄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최고의 인력을 뽑으려는 것이고, 이를 방해하는 여러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는 겁니다.

왜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여성이 그렇게 적은지, 왜 구글은 그 수를 늘리려고 하는지, 그게 과연 공평한 건지 처음 궁금증이 든 시점에서 당신은 여러 똑똑한 조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동료들에게 IT 산업에서 겪은 일을 물어볼 수도 있었겠죠. 자신의 편견과 상충되는 증거를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검색 엔진이 있죠.) 당신을 위한 독서 목록을 만들어봤습니다. 션 스티븐스와 조너선 하이트가 헤테로독스아카데미에 올린 글은 남녀의 심리적 차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두었습니다.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나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 아니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주의할 점이 많습니다. 제이 도는 미디엄에 올린 글에서 여성이 IT 분야 직장에서 차별받는다는 증거를 요약합니다. 진화생물학자 수전 사데딘이 쿼라에 올린 글은 당신의 글에 보이는 진화 생물학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격파합니다. 구글 수석 엔지니어를 지낸 요나탄 정거가 미디엄에 올린 글은 IT 산업에 대한 당신의 오해를 논합니다. 클레어 케인 밀러의 뉴욕타임즈 칼럼은 외로운 괴짜 천재 신화의 해악을 파헤칩니다. 신시아 리는 여성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당신의 오류를 “우먼스플레인”하는 글을 복스에 썼습니다.

제가 꼭 이 글을 쓸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저는 바쁜 사람이고 당신이 약간의 노력만 기울였다면 이런 상황이 방지됐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전 제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압니다. IT 산업의 여성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항상 겪어야만 할 테니까요.

 

래리 올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출처: 뉴욕타임즈 https://www.nytimes.com/2017/06/02/upshot/how-to-raise-a-feminist-son.html?mc=adglobal&mcid=facebook&subid1=sectiondiversitytest&ad-keywords=auddevgate&mccr=lifeopinion

원문 게시일: 2017년 6월 1일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는 방법

우리는 딸들에게는 선입견에 맞서 싸우고 너희의 꿈을 좇으라고 가르치지만, 아들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글 클레어 케인 밀러 (

1

(그림: 아그네스 리)

오늘날 우리는 우리 딸에게는 ‘넌 되고 싶은 건 뭐든지 될 수 있어 – 그게 우주비행사든 현모양처든 말괄량이든 천상 여자아이 같은 여자아이든!’  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와 역할이 열리고 있지만, 남자아이들의 역할은 아직도 제한받고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아직도 소위 여성스럽다고 생각되는 관심사를 가지는 것이 터부시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해야 하거나 남자아이들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는 억눌러져야 한다고 소리를 듣는다.

만약 모두가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 한다면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말했듯 “나는 우리가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우리가 아들을 딸처럼 키울 때까지 이것은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I’m glad we’ve begun to raise our daughters more like our sons, but it will never work until we raise our sons more like our daughters)”.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남성의 역할이 함께 확장되어야 여성의 역할이 비로소 진정으로 폭넓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여성에게만 이로운 일이 아니다. 현재 남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뒤처지고 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핑크 경제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남자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협동력, 공감력, 성실함 등 ‘여성적’이라고 판단되는 기량들은 현대 직장과 학교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량들을 요구하는 직업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자신의 새 저서에서 페미니스트 딸을 키우는 방법을 거론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우선 페미니스트를 단순하게 ‘모든 면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사람’ 이라고 정의를 내렸으며 해당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신경과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를 만나며 가장 최근 연구와 데이터들을 활용했다. 필자가 만나본 이들은 ‘친절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자신의 꿈을 좇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눈물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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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우는 양과 빈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5세가량의 남자아이들은 화를 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 외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교육 활동그룹 ‘어 콜 투 맨'(A Call to Men)의 공동 창설자 토니 포터(Tony Porter)는 말한다.

“우리의 딸들은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로봇처럼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에게는 넓은 감정의 범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자기 자신을 멈추고 ‘나는 화난 게 아니야. 나는 지금 겁에 질려있어.’라고, ‘나 상처받았어’,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알려주세요.”라고 토니 포터는 말한다.

롤모델을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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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연구에 의하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롤모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특히 더 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상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남자아이들은 행동, 학업, 소득 등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David Autor)와 멜라니 와서맨(Melanie Wasserman)는 이에 대해 남자가 책임감 있게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토니 포터는 “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존경할만한 남자들을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

덧붙여 남성 롤모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여성 모델도 제공하라. 당신이 직접 알고 있는 여성이 이룩한 업적들에 관해 얘기하고 또 스포츠 정치 미디어 등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명한 여성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편모 가정에서 자라난 아들들은 대개 여성의 성취를 매우 존중한다고 저소득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아이들을 위한 ‘어번 프렙 아카데미'(Urban Prep Academies)단체 창설자 팀 킹(Tim King)은 말한다. 팀 킹은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어머니들만이 아닌 다른 여자들도 이렇게 존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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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어른들에게는 이분법적인 성 역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린이들을 겨냥한 상품들은 50년 전보다 더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 공주님은 분홍색이며 트럭은 파란색이라는 색깔 구분이 더 이상 장난감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컵과 칫솔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 역할에 대한 완고한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분홍색이 남자아이, 파란색이 여자아이를 상징했었다. 수많은 연구 또한 영유아는 장난감에 강한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고 뒷받침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여자 남자 장난감을 나누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게 되는 약 2~3세 시기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시기는 사회적 압력이 선천적인 선호를 억압할 수 있는 시기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학과장 캠벨 리퍼 (Campbell Leaper)는 단적 연구들이 장난감의 성 구분은 아이들 성별에 따른 장기적인 학업적, 공간 지각적, 사회적 능력에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목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려면 자기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심사가 전통적으로 어떤 성별에 귀속되어 있든 말이다. 모든 아이가 모두 같은 일을 재미있어 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 갇혀 아이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블록 놀이나 찰흙을 가지고 노는 장난을 제안해 보라. 사회학자들은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자아이들이 분장 놀이를 하거나 미술을 배워보도록 격려하라고 제안한다. 성차별적인 편견을 보면 지적하라. (“장난감 쇼에 여자아이들만 나오는 건 정말 별로네. 남자아이들도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이러한 행동들은 남자아이들을 돕는 동시에 여성의 지위를 향상할 수 있다. 부모가 딸이 축구를 하거나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장려하지만, 아들이 발레를 배우거나 간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스러움’을 ‘더 낮은 신분’과 연관 짓는 행동이라고 연구원들은 밝힌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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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몇몇 엄마들은 딸을 키우지만, 아들은 사랑해준다”라고 흑인 청소년교육 관련 작가이자 강연가인 자완자 쿤주후(Jawanza Kunjufu)가 말했다. 이런 엄마들은 자신의 딸에게는 공부하고 집안일을 돕고 교회에 가도록 밀어붙이지만, 아들에게는 유독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짚어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데이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10세~17세 여자아이들은 매주 남자아이들보다 2시간 더 집안일을 하고 있으며, 남자아이들은 집안일을 했다고 용돈을 받을 가능성이 15% 더 높다고 한다.

“아들들에게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 우리 딸들이 회사에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유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아들들도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라고 씽크탱크 뉴 아메리카(New America)의 CEO 앤 마리 슬라터(Anne-Marie Slaughter)이 말한다.

남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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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맞벌이 부부여도 남편보다 아내가 아동과 노인을 더 많이 보살피며 더 많은 양의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또한, 현대 사회는 간병 및 육아 관련 직업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아이들에게도 다른 이들을 돌보는 방법을 가르치라. 성인 남성들이 자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함께 얘기해보고, 친부모와 친척들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딸들뿐만 아니라 아들도 함께 돌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라고 앤 마리 슬라터는 얘기한다. 아픈 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입원해 있는 친척을 방문할 때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반려동물이나 나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겨보라. 아이들을 보거나,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의 스포츠팀 코치로 활약하거나 가정교사로 일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라.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실에 영유아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초등학생들의 공감하는 능력을 증가시키고 공격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을 나눠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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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가능하면 집안일을 하거나 육아 활동을 할 때 성 역할을 거부하라.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 사회학자 댄 클라슨(Dan Clawson)는 주장한다. “만약 엄마가 음식을 요리하고 있고, 집을 청소하는데 아빠가 잔디를 깎고 있고 집을 자주 비운다면 아이는 그걸 보고 배우게 됩니다.”

맞벌이 부부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아들이 청소년일 때 모친이 적어도 1년간 일을 했다면, 그 아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또 다른 연구는 아들이 14살이 되기 전 엄마가 경제활동을 한다면 그 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밝혀졌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 케이틀린 맥긴(Kathleen McGinn)은 “경제활동을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남성들은 부부의 역할에 대해서 훨씬 성평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잇게 격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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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애리조나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이 끝날 때쯤 아이들은 성별로 서로를 차별하기 시작하며 이런 행동을 성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성 친구와 함께 노는 아이들은 문제 해결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애리조나 대학교의 리처드 페이브스(Richard Fabes)는 “성별로 그룹을 나누거나 활동을 나누는 게 더 빤히 보일수록, 더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켄터키 대학의 발달 심리학자 크리스티아 브라운(Christia Brown)은 아이들이 성별을 근거로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도록, 영유아 생일파티와 스포츠팀에 남녀 차별 없이 모두를 초대하고 함께 활동하라고 조언한다. 성별에 따라 구분을 짓는 언어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 선생님이 “얘들아(Children)” 대신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Boys and girls)”이라고 말하는 경우 아이들의 성적 고정관념과 전통적 성적 역할분담이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였고 이성 친구와 노는 시간이 적었다.

여성 친구가 있는 남성들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볼 가능성이 작다고 포터는 말한다.

상대가 거절했을 때에는 그 거절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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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존중과 허락을 배우는 또 다른 방법: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이 남의 몸을 만질 때는 서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라. 또한 ‘싫어’라는 단어의 힘을 가르치라. 간지럽히고 장난치며 놀다가도 아이들이 ‘싫어’라고 말하면 멈춰라.

건강한 문제 해결 방법을 집에서부터 보여줘라. 이혼과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돼서도 연인 관계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버지니아 대학의 국가 결혼 프로젝트(National Marriage Project) 회장이자 사회학자인 W. 브래드퍼드 윌콕스 (W. Bradford Wilcox)는 말한다.

다른 이들이 편협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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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누군가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라. 또한, 아들과 함께 역할극을 통해 놀림과 괴롭힘을 보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브라운은 권장한다. 

아들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부모는 말을 해야 한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것은 잘못된 행동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아들이 더 좋은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기대하라. “남을 깔보거나 편협하거나 무례하거나 모욕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육할 수 있게 늘 주의해야 한다”라고 킹이 말한다.

‘여자애’ 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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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여자애처럼 뛰네”, “계집애 같아” 등 비하적인 단어나 성차별적인 농담은 하지 말고, 당신의 아들이 말하게도 하지 마라.

 더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성차별과 그러한 단어도 조심해야 한다. 베이츠 대학 소속 사회학자인 에밀리 케인(Emily Kane)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들은 아들들이 놀림당할까 봐 아들들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잘할 만한 것을 성별에 따라 우리 멋대로 판단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차별을 없애는 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대학의 뇌신경학자 리스 엘리엇(Lise Eliot)은 남자아이가 여자 같다는 놀림을 받는다면 “아니, 구슬 놀이는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할 수 있는 건데!”라고 대답하거나 “나는 여자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남자보다 여자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것을 추천한다.

책을 많이 읽어라, 특히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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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남자아이들은 과학과 수학에 뛰어나고 여자아이들은 언어와 독서에 두각을 보인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편견은 인간이 그 편견대로 행동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아들보다 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리퍼는 이야기한다. 그러니 아들들과 활발한 대화를 나누고 독서를 장려하며 편견에 맞서 싸우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주인공 소년이 세계를 구하고 여자친구도 구하는 고전적인 이야기보다 딱딱한 틀을 깨고 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또는 고전적인 책이나 뉴스 이야기를 마주치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라: 왜 “유치원에서의 하루”에 나온 엄마는 맨날 실내복을 입고 있고 집 밖으로 안 나갈까? 왜 뉴스에 나오는 건 꼭 나이 든 아저씨들일까?

“고정관념을 매우 잘 발견하고 습득하는 3살쯤 이러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고정관념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이게 당연한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려요.”라고 브라운은 말한다.

소년 시절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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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그네스 리)

페미니스트 아들을 키운다는 건 뭘 하면 안 되는지, 뭘 해도 되는지 온종일 말해야 하고 성적인 차이를 완전히 지워버리려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다. 한 예를 들자면 모든 XY 염색체를 가진 포유동물은 과격한 몸싸움 같은 놀이를 즐긴다고 엘리엇은 말한다.

그러니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고, 농담하고, 운동 경기를 함께 보고, 나무를 타고, 야영장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오라. 남자아이들에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너희들에게는 네 감정을 인정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라. 너희들은 가정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가족을 돌봄으로써 가정을 지킬 수 있음을 알려줘라. 남자에게는 강한 면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불의를 보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강함을 보여줘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열정을 좇는 법을 알려줘라.

여성들은 어떻게 디즈니 공주를 현대화했는가

여성들은 어떻게 디즈니 공주를 현대화했는가

출처: 버즈피드 “How Women Modernized The Disney Princess

원게시일: 2016년 12월 9일

 

지난 여름 <모아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폴리네시아 소녀의 이미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즉각적으로 주인공 모아나의 현실적이고 다부진 신체에 주목했다. <모아나>를 론 클레멘츠와 함께 감독한 존 머스커는 7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모아나에게 차별점을 주려는 마음이 담긴 의도적인 시도”라면서 “우리는 모아나가 액션 영웅이 되기를 바랬다”고 설명했다.
머스커 감독은 근육질 몸이 모아나를 차별화한다고 보지만, 일부 디즈니 팬들에겐 그런 선언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감독이자 작가인 브렌다 채프먼은 2012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화살을 쏘는 주인공 메리다에 대해 “실제 소녀를 원했다”면서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팔과 허리, 다리가 가느다란 소녀가 아니라 운동선수 같은 소녀를 원했다”고 말했다. 채프먼은 <메리다>가 동화의 관습을 뒤집었다고 설명한다.
그보다 14년 전, 뮬란의 성우 밍나웬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신데렐라의 정반대”이며 “(뮬란은) 드레스가 아니라 갑옷을 입는다”고 묘사한 바 있다.
디즈니 여주인공이 이전 여주인공들과는 다른 노선을 취했다는 주장은 1989년작 <인어공주>의 당찬 공주 에리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다. 머스커와 함께 <모아나>와 <인어공주> 등 다양한 디즈니 영화를 제작한 론 클레멘츠 감독은 1990년 스크립츠하워드뉴스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애리얼의 붉은 머리색에 놀란 사람들도 있다면서도 “우린 (머리색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에리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공주는 그 이전의 공주들과는 다르다’는 말은 동물 친구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만큼이나 디즈니 공주 공식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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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스토리 및 개발 아티스트 수 니콜스의 초기 스케치 (Courtesy of Sue Nichols; Walt Disney Co.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그러나 뮬란의 아름다운 근육이나 모아나의 활동적인 몸매는 문자 그대로 이들의 ‘형태’를 빚어낸 은막 뒤의 여성들이 아니고서는 영화관에 걸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머스커는 7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모아나에 대해 “우리 제작자를 비롯해 이 영화의 여성 관계자들은…’말벌처럼 허리가 잘록한 여성은 안된다. 더 현실적인 몸의 형태를 주자. 바람이 세게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자’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디즈니 여주인공도 공주 공식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리얼 이래로 공주들은 매번 규칙을 조금씩 굽혀오기는 했다. 그리고 디즈니가 캐릭터를 더 똑똑하고 용감하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변화를 추구해온 것은 디즈니 내부 여성들의 역할이 크다. 디즈니가 내부적으로 공주 영화들이 여자아이들에게만 소구력이 있는지 논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 공주의 의미를 뿌리부터 뒤흔들며 주인공을 21세기 여성으로 탈바꿈시켰던 여성 부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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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브렌다 채프먼 / Jeff Singer for BuzzFeed News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1966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소위 ‘9인의 노장(Nine Old Men)’이라고 불리는 20-30년대에 입사한 영향력 있는 감독들이 은퇴(혹은 사망)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해 이들을 대체한 신진 감독들은 여전히 대부분 백인 남성이기는 했지만 여성 등장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문에는 큰 변화를 이끌어낼만한 힘이 있는 여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80년대 대부분이 지나도록 애니메이션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각적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스토리 아티스트’ 중에는 여성이 전무했다. ‘파이프라인’ 문제(역주 – 주로 IT 분야에서 낮은 여성 고용율의 원인을 관련 전공자 수급에서 찾으려는 비유)가 있었다. 1979년 디즈니를 퇴사한 돈 블루스 감독이 차린 ‘돈 블루스 프로덕션(Don Bluth Productions)’에 7명의 여성 아티스트를 빼앗겼던 것이다. 그렇게 디즈니를 빠져나간 인물 중 하나인 로라 쿡은 블루스가 당시 디즈니에서 적극적으로 여성을 승진시키던 몇 안 되는 감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87년 <인어공주> 초기 제작 단계에서 디즈니는 젠더 균형에 있어 작은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이 발걸음은 박스오피스 성공으로 그 가치를 톡톡히 증명했다. 채프먼은 미대를 갓 졸업하고 스토리 수습생으로서 디즈니에 입사했다. 채프먼은 자신을 고용했던 남성이 내려다보는 말투로 “당신이 여자라서” 이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회상(링크)한 바 있다. 이후 채프먼은 디즈니 스토리 부문의 수장이 되었고 <라이온킹>의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이끌었으며, 작가이자 감독으로 <메리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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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이 그린 <인어공주>를 대표하는 장면 / Walt Disney Pictures

<인어공주>의 엔딩 크레딧에 오른 7명의 스토리 아티스트 중 여성은 채프먼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 입사시기가 가장 늦었던 채프먼은 에리얼이 해변의 에릭 왕자를 지켜보며 ‘저 세상의 일부(Part of Your World)’를 반복(리프라이즈)해 부르는 부분을 스케치하는 임무를 맡았다. 채프먼은 짝사랑에 빠진 어린 인어공주 에리얼 뒤로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을 그렸고, 이는 <인어공주> 전체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기도 했다.
에리얼의 가장 큰 적인 바다마녀 우르술라 애니메이션화를 맡은 케이시 지엘린스키는 “9인의 노장이었다면 에리얼은 굉장히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에리얼은 인간 왕자를 쫓아 바다를 떠나기까지 하는 결연한 젊은 여성이다. 극도로 순응적인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등 이전의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조개껍데기 비키니를 입은 빨강머리 에리얼은 아버지를 거스르는 호기심과 반항의 화신이다. <인어공주>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에드 곰버트는 “월트 디즈니 때와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에리얼도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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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메이터인 케이시 지엘린스키 / Emma McIntyre for BuzzFeed News

제임스 B. 스튜어트의 책 <디즈니워DisneyWar>에 따르면 디즈니 임원진은 <인어공주>가 어린 소녀들에게만 인기가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우려가 무색하게 <인어공주>는 1989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가 되었고 음악으로 아카데미 상을 두 개나 받기도 했다. <인어공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지만 머스커 감독 자신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에리얼이 왕자 없이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부 여성들에게 타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상영회에서 한 관객이 제작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충분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추궁해 클레멘츠와 머스커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LA타임즈의 보도도 있다. (해당 기사 작성 과정에서 클레멘츠와 머스커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디즈니의 다음의 공주 영화는 타인에게 오해 받는 왕자가 독서광 벨을 성에 가두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화려한 뮤지컬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였다.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 린다 울버톤을 영입했다. 아직도 디즈니 대표 시나리오 작가인 울버톤은 1992년 <미녀와 야수> 개봉에 즈음하여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상부에서 비난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디즈니는 내가 여성인만큼 성차별적인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울버튼은 채프먼과 작사가/제작자인 하워드 애쉬먼과 함께 다면적인 여성 히로인 벨을 만들어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울버튼은 젠더 문제에 대해 더 민감해져야 한다는 비전이 있었다. 당시 디즈니에 근무했지만 <미녀와 야수>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지엘린스키는 한 남성 스토리 아티스트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했던 일을 회상했다. 벨이 포로로써의 삶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울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지엘린스키는 울기는 하겠지만 펑펑 울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채프먼은 벨이 야수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야수의 잔인성에 맞서는 장면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분노한 벨이 “당신은 성질을 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야수는 침묵 속에 빠진다. 채프먼이 둘의 충돌을 그린 스토리보드를 제시했을 때 함께 스토리 작업을 하던 10명의 남성들은 열렬히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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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의 야수와 벨 / Buena Vista Pictures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그러나 한계를 밀고나가는 일이 전부 이처럼 쉽지는 않았다. 울버튼은 2016년 5월 엔터테인먼트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벨의) 대사 한 줄 한 줄이 전부 전쟁이었다”고 회상한다. 잔인한 새어머니 밑에서 하녀라는 운명에 쾌활하게 순응하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벨은 자신을 잡아 가둔 야수의 면전에서 소리친다. 울버튼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여성 주인공을 희생자로 그리는 개념이 이미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는 것을 꼽는다. “난 60, 70년대의 여성 운동을 거쳐온 사람이고 이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 벨이 왕자가 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조용히 견뎌내고 그저 순수한 장미만을 원한다고? 이렇게 심한 학대를 겪으면서도 착한 마음을 유지한다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미녀와 야수>의 시각 효과에 관여했던 수 니콜스는 버즈피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벨에게 여성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자신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나중에 포트 부인 캐릭터로 이어졌다. 니콜스는 벨이 야수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느낌을 받으려면” 여성의 지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돈 블루스 프로덕션’에서 수 년간 일한 후 다시 디즈니에 돌아온 로라 쿡은 마지막 장면에 벨이 인간으로 변한 야수를 부드럽게, 머뭇거리며 어루만지는 모습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자신의 사진을 찍어 참고했다고 말한다. 7명으로 이루어진 벨 에니메이션 팀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쿡은 “여성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편안했다고 설명한다.
울버튼은 1992년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로서는 대담하게 “벨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서 “90년 대의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벨은 왕성하게 책을 읽어치우는 독서가이며 “시골 생활” 이상의 것을 원한다. 악역 개스통은 벨의 저항에도 구애를 멈추지 않는 무례한 여성혐오자다. <미녀와 야수>는 여전히 사랑 이야기지만 벨은 자랑스러운 비혼 여성의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간 캐릭터다. 그리고 벨을 그쪽으로 움직인 것은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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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메이터이자 스토리 아티스트 로라 쿡 / Emma McIntyre for BuzzFeed News

그 다음에 등장한 두 명의 디즈니 여주인공인 자스민과 포카혼타스는 다소 부침을 겪었다.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는 아랍 시민단체로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주요 인물들은 시각적으로 백인화(whitewashing)하는 반면 악역들은 외모와 말투에 “민족적” 특성을 강화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알라딘>의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레베카 리스는 <알라딘> 제작 당시 아랍 남성(혹은 여성) 아티스트를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스민은 아버지 술탄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자신이 원하는 남편감을 찾으려 하는 인물이다. (자스민은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상대이기는 하지만 공식 디즈니 프린세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기사에서는 실제 왕족이 아니거나 공식 디즈니 프린세스가 아닌 경우도 공주로 다루고 있다.)
자스민이 아버지 술탄에게서 받는 애취급과 압박은 에리얼보다도 더 심하게 그려진다. 또 자스민은 영화 속에서 남성 특권 의식(male entitlement)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알라딘과 자스민의 아버지, 자파가 자스민의 결혼 상대를 논하자 자스민은 “다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서서 제 미래를 결정하려 하시다니. 저는 우승 상품이 아니에요.”라고 소리친다. <알라딘> 크레딧에 오른 16명의 스토리 아티스트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리스는 정원에서 술탄이 새로 가득 찬 새장 속에 비둘기를 집어넣자 자스민이 충동적으로 새장을 열어 새들을 더 넒은 세상으로 풀어놓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의 충돌하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설명한다. 리스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스민이 원하는 건 자유라는 걸 그렇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알라딘>은 지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고 싶어하는 여성 자스민을 그린다.
<알라딘>의 두 번째 여성 스토리 아티스트인 니콜스는 자스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파를 유혹하는 장면에 참여했다. 지니가 마법을 통해 자스민을 억지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파를 속이기 위해 자스민은 자파의 치아 사이에 있는 “작고 귀여운 틈”을 노래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자신을 구하려는 알라딘의 노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리스는 “자스민은 해야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똑똑한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왕자님”이 자스민을 구해내지만, 그 과정에서 자스민의 도움이 들어가는 것이다.
<포카혼타스>는 세상의 통념에 저항하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젊은 여성을 그리는 데 <알라딘>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간다. 17세기에 배경을 두고 있는 <포카혼타스>에서 여주인공은 식민지 개척자와 사랑에 빠져 사형 위기에 놓인 그를 구해내고 그 과정에서 무장 충돌을 막아낸다. 그러나 <포카혼타스>의 서사는 전형적 이미지(stereotype)과 역사적 왜곡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포우하탄 족 문화에 대한 자문을 제공한 셜리 ‘작은 비둘기’ 커스타로우 맥고웬이 <포카혼타스>를 비판한 것은 유명하다. 1995년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맥고웬은 디즈니가 자신을 오도했다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 이야기가 이미 너무 왜곡되었기에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포카혼타스>의 크레딧에 오른 스토리 아티스트는 전부 남성이었으며 그 중에서 미대륙 원주민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인공 포카혼타스를 그린 17명의 애니메이션 팀에도 여성은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렇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해도 꼭 필요한 ‘청소’ 팀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청소 팀은 거친 스케치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청소 팀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에밀리 줄리아노는 팀의 역할이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에서 좋은 부분을 보존하고 이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청소 팀은 여러 가지 오류를 잡아낸다. 줄리아노는 특히 포카혼타스가 숨을 들여마시자 넓은 가슴이 위로 치솟다가 (다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실수를 고친 적이 있다고 회상한다. 포카혼타스의 가슴이 제대로 붙어 있도록 확인한 것은 청소 팀의 공이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유해한 신화를 공고하게 하기는 했지만 <포카혼타스>가 디즈니 공주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 없이(실제로 결혼식을 보여주건 암시하건 간에) 끝난 영화라는 점은 언급할 만하다. 포카혼타스는 남자 대신 자신의 공동체를 선택한다. 부상을 입은 존 스미스가 같이 유럽에 가자고 제안하지만 포카혼타스는 이를 거절하고, 영화는 포카혼타스가 배를 타고 자신의 삶에서 멀어져 가는 스미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끝난다.

인종적 재현에 있어 나쁜 성적을 받아든 디즈니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 1998년작 <뮬란>에서는 확연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뮬란>은 젊은 여성인 뮬란이 남장을 하고 아버지 대신 중국군으로 참전하는 영화다. <뮬란>의 제작자 팸 코츠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디즈니가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종 집단의 일원을 제작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폈다고 설명한다. 특히 선구적인 캐릭터 디자이너 첸이 챙(Chen-Yi Chang)과 시나리오작가 리타 샤오(Rita Hsiao)가 팀 저변 확대를 도왔다. <뮬란> 비주얼 개발에도 참여했던 니콜스는 이메일을 통해 “<뮬란>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할 때쯤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인종적 특성이 디자인에 드러나도록 해야한다는 지시를 실제로 받았다”고 밝혔다.
비주얼 개발팀으로 참여했던 캐롤라인 허는 여성적이고 예쁘면서도 남성 군인으로 여겨질 만한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허는 뮬란이 “남성의 갑옷을 입어야만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뮬란은 남성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했던 소녀다. 즉 여성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남성적인 일을 하는 소녀를 어떻게 여성으로 그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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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은 뮬란. Buena Vista Pictures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허는 이런 난점 때문에 뮬란은 디즈니 프린세스 상품화에서 어려운 위치에 놓였다고 설명한다. 보통 판매되는 뮬란 인형은 뮬란이 영화 내내 입고 있는 갑옷이 아니라 여성적인 옷이 입혀져 있다는 것이다. 허는 “뮬란은 소녀틱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디즈니에게 가장 까다로운 지점이다”라면서 “현재 상품들을 보면 뮬란은 다른 ‘진짜’ 공주들처럼 강조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
다른 공주들이 “진짜” 공주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은 로맨스였지만, 뮬란과 샹의 관계가 비중이 적었던 것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코츠는 제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결혼의 가능성을 제외했다고 설명한다. “끝났다고 도장을 꽝 찍기 위해, 깔끔하게 포장한 듯한 인생을 위해 뮬란이 결혼을 하는 식의 영화는 싫었다”면서 코츠는 “뮬란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코츠는 <뮬란> 제작 당시 여성 스토리 아티스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한다. 로나 쿡이 디즈니를 떠난 이후 남아 있는 스토리 아티스트들은 전부 남성이었다. 코츠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몸의 형태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남자들 속에 파묻혀 긴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런 점이 두드러졌던 장면은 군인들이 뮬란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될 때였다. 뮬란은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여성이라고 밝혀지는데, 영화 화면 상으로는 뮬란의 벗은 몸이 비춰지지 않는다. 남성 아티스트들의 초기 스케치에서는 “뮬란이 전체 (부대) 앞에서 여성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건 너무나 모욕적으로 느껴졌다”고 코츠는 회상한다. 1998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코츠는 초기 버전에서는 뮬란의 상급자가 사람들 앞에서 뮬란의 옷을 벗겨내는 장면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코츠는 당시 “남자들은 전부 이게 여성들에게 모욕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코츠 덕분에 최종 버전에서는 뮬란의 정체가 거의 사적인 상황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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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개발 아티스트 수 니콜스의 티아나 플레이스 광고. Courtesy of Sue Nichols

<공주와 개구리>는 전세계적으로 총 2억 6,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는 디즈니에게는 흥행 실패로 간주되는 성적이다. 또 이런 미적지근한 성적을 낼까 우려한 나머지 디즈니는 <라푼젤>에서 남자 캐릭터 플린의 역할을 늘렸고 남자 아이들이 너무 ‘여자애’ 같다는 이유로 영화를 멀리하지 않도록 원제를 라푼젤Rapunzel에서 탱글드Tangled로 바꾸기까지 했다. 디즈니 공주 영화가 다른 관객층을 쫓느라 정작 소녀들에게 매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디즈니 에니메이션 부문을 이끌던 에드 캐트멀은 2010년 시카고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제목을 ‘탱글드’로 바꾸는 것은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답했다. 캐트멀은 “여자아이들만을 위한 동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면서 디즈니는 “모두가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플린은 분명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플린의 보이스오버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A.O.스콧의 비평은 “각진 턱을 가진 라푼젤의 연인 플린이 공주 이야기를 이렇게 일시적으로 납치하는 것은 냉철한 상업적 계산으로 보인다”면서 “관객석에 있는 불안해하는 소년들에게 ‘여자애’ 같은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말하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2012년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에서는 마침내 디즈니 공주영화가 왕자를 버리게 된다. 채프먼이 아이디어를 내고 감독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메리다는 이전의 여러 디즈니 공주들과 마찬가지로 정략 결혼을 거부한다. 그러나 메리다는 자스민이나 뮬란처럼 궁극적으로는 부모님도 받아들일 만한 다른 결혼 상대를 찾는 식으로 해피엔딩을 맞지 않는다. 메리다는 엄마랑 화해를 한 후 모든 구혼자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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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 Disney / Pixar

<메리다>는 첫번째 장면부터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비판한다. 영화를 여는 것은 활쏘기를 좋아하는 메리다에게 “숙녀”를 기대하는 엄마다. 이후 메리다는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활쏘기 대회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몸을 꽉 죄는 실크 드레스의 소매와 등 부분을 찢은 메리다는 활쏘기로 모든 구혼자를 제친다.
채프먼은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소녀틱한 공주의 틀을 깨고 싶었다”면서 “그런 관념과 싸우는 공주,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공주,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싸울만큼 자존감이 강한 공주, 그러면서도 약점이 있는 공주를 원했다”고 설명한다. 채프먼의 지휘 아래 픽사의 기술팀은 머리카락을 에니메이션화 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메리다의 빨간 곱슬머리는 성격만큼이나 제멋대로다. 또 메리다 이전 대부분의 디즈니 공주와는 달리 메리다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다. 메리다의 아버지는 중간 중간 긴장을 해소하는 코믹한 요소일 뿐이다. 채프먼은 “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원했다”면서 “에리얼과 벨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성 최초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을 감독한 채프먼은 두 번째 여성 감독인 제니퍼 리가 등장할 길을 닦아 주었다. 제니퍼 리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참여한 2013년 작 <겨울왕국Frozen>은 두 자매의 관계를 다뤄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이뤄냈다. 로맨스는 서브플롯에 불과한 이 영화를 블록버스터급 흥행작으로 만든 것은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였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홍보 영상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감정적인 클라이막스는 안나가 오랫 동안 사이가 멀어졌던 언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다. 안나는 자신의 목숨을 구할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으러 절뚝거리며 향하는 대신 언니를 죽이려는 영화의 악당과 언니 엘사 사이에 몸을 던진다. 그 결과 안나는 얼음으로 변하지만 놀랍게도 중요한 건 남자의 사랑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엘사가 얼어붙은 동생 안나를 껴안고 울기 시작하자 진정한 자매애의 포옹 덕분에 저주가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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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집중하는 브렌다 채프먼, 에밀리 줄리아노, 케이시 지엘린스키의 사진 (좌측부터 순서대로). Courtesy of the artists

남편 로버트와 함께 겨울왕국 삽입곡을 작곡한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온 노래 ‘렛잇고(Let It Go)’가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라고 말하는 주제가”라고 설명한다.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영감을 얻은 리 감독은 시나리오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게 된다. 본래 뿌리와는 굉장히 먼 방향이었다. 스튜어트의 저작 ‘디즈니워’에 따르면 겨울왕국은 2003년 초기 제작 단계에서는 (한 여성 임원의 말을 빌리자면) “한 못된 년(a terrible bitch)”에 대한 영화였다.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의 동화 원제대로 ‘눈의 여왕(The Snow Queen)’을 제목으로 사용했던 당시에는 마음이 냉담하고 악독한 엘사가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렛잇고’를 듣고 난 후 리는 엘사를 엄청난 마법의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모르는 강력하면서도 불완전한 여성으로 재구성했다. 스크립트노트와의 인터뷰에서 리는 “어떤 날엔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자 이게 안나다. 이게 안나의 여정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그거다. 자, 이건 엘사다. 이건 엘사의 여정이다’라고 한 적도 있다”고 회상하면서 그게 “이 영화의 주제고 내가 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다”라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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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클라이막스 장면의 엘사와 안나. Walt Disney Pictures

연속으로 백인 공주를 내놓았던 디즈니는 마침내 <모아나Moana>를 공개했다. 인종, 문화적 재현에 기하는 노력을 한 차례 더 강화한 디즈니는 마오리 족 출신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를 채용했지만 와이티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를 거절하게 된다. (최종 필름 크레딧에는 와이티티가 시나리오 작가로 올라 있지 않다.) <인어공주>, <알라딘>, <공주와 개구리> 등에서 재현 문제로 논란을 빚은 디즈니로서는 클레멘트와 머스커에게 감독을 맡기는 것에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클레멘트와 머스커 감독은 폴리네시아 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제작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확대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모아나>가 분리된 토착 문화를 무턱대로 차용했다는 비판이 일었으며, 폴리네시아 원주민 영화를 디즈니가 만드는 것에 대한 식민주의적 의미를 고찰하는 시각도 있었다.)
<모아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 이야기는 암시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아나는 그저 자신의 섬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똑똑하고 강한 소녀이며 그녀의 몸은 현실적이고 성적 대상화가 되어있지 않다. <모아나>는 디즈니의 이전 공주 영화에서 여성들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의 총집합이다. <모아나>는 벨과 티아나의 지성과 야망, 뮬란과 메리다의 실제 인간에 가까운 몸, 포카혼타스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 <메리다>와 <겨울왕국>에서 시도된 로맨스에 대한 거부가 합쳐져 있다. <모아나>를 제작한 오스냇 슈러는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전 단계를 통틀어 사랑 이야기는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끼어넣을 자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모아나의 성별은 거의 부차적인 문제다. 미래 지도자라는 모아나의 위치에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아나가 드넓은 바다로의 모험을 꿈꿀 때 부모님이 질겁을 하는 건 단순히 위험하기 때문이지 ‘여자애한테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슈러는 초기 버전에서 모아나가 성별에 관련된 장벽에 맞닥뜨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원한 방향이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디즈니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공동 에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에이미 로슨 스미드는 디즈니 여주인공에게 기대되는 육체적 특징에서 벗어나 모아나의 활동성에 집중했다. 비록 스미드와 직접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지만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와의 인터뷰를 보면 스미드는 에니메이션 팀에 모아나의 뛰는 모습이 “더 활동적”이고 “더 자신감에 넘쳐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말한다. 모아나가 덩치가 산만한 반신반인 마우이의 귀를 움켜쥐고 “넌 내 영웅이 아니야”라고 씩씩 댈 때 모아나의 강인한 이두박근이 수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작 <겨울왕국> 때만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던 결혼이 들어가지 않는 플롯과 허리가 가느다랗지 않은 공주를 상상할 수 없던 디즈니임을 고려할 때 모아나는 기념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츠는 모아나를 지난 디즈니 여주인공들과 극명하게 대비하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클레멘츠는 타임 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아나를) 공주 이야기와는 다른 전통을 따르는 영웅기이자 성장영화라고 봤다”고 설명한다. 이런 말은 단순히 클리셰일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선 환원주의적이기까지 하다. 프로즌에서 안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벨은 2013년 인터뷰에서 서투른 구석이 있는 안나가 “공주 관념에 반하는 공주”라고 설명한다. 이어 벨은 안나가 “말이 너무 빠르고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 나오며 우아하지도 않지만, 대담하고 끝없이 낙관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한다.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도 세세하게 분류된 나머지 서투름과 전복이 동일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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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에서 마우이에게 자신의 배에 오르라고 명령하는 모아나. Walt Disney Co. / Courtesy Everett Collection

지난 세월 동안의 변화는 각각의 공주들이 그 이전의 공주를 옭아맸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리엘부터 시작해 공주들은 점점 더 인간처럼 변해왔다. 제작에 참여하는 실제 여성의 수가 늘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아리엘, 벨, 자스민, 포카혼타스, 뮬란, 티아나, 라푼젤, 메리다, 안나, 엘사, 그리고 모아나는 각각 뚜렷한 특성을 갖고 있다. 공주 관념에 반하는 공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주로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지난 30년 가까이 그래왔다. 각각의 불완전한 캐릭터들이 조금씩 더 인간성을 띄게 된 것은 작품 뒤에 있는 여성들의 노고 덕분이다.
슈러는 모아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즉각적으로 이해했던 것은 여성 제작진이었다고 말한다. 모아나의 움직임을 계획하던 단계에서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 포즈를 보여주며 ‘이런 게 전사지’라고 외쳤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홀로 있어도 강인하고 똑똑하며 용감한 모아나는 이전의 디즈니 공주들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공주들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여성들 덕분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용어사전 – 우리가 다 페미니즘을 전공한건 아니니까

출처: http://www.usatoday.com/story/news/2017/03/16/feminism-glossary-lexicon-language/99120600/

온오프라인에서 접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무슨 뜻인지 파악은 못한 단어들을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올라온 신문 기사를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거나 아직 접하지 못한 용어들도 존재합니다. 괄호 안에 덧붙인 설명은 역주입니다.

~기초과정~

Feminism: 페미니즘. 여성과 남성 사이에 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자 갈망.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지난 달 페미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전적 의미를 조금씩 변형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평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가 bell hooks (벨 훅스,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30권 이상의 관련 서적 저자) 는 페미니즘을 “성차별, 성차별적 착취와 억압을 없애려는 운동” 이라고 부른다.

Patriarchy: 가부장제. 남성이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상하구조 사회.

Sexism: 성차별. 성차별주의.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

Misogyny: 여성혐오. (여성을 향한 불신, 불호, 혐오)

Misandry: 남성혐오. (남성을 향한 불신, 불호, 혐오)

 

~심화과정~

Hostile sexism: 적대적 성차별. ‘성차별’ 이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 드러내 놓고 모욕을 주며,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함) 비하하는 모멸적인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Benevolent sexism: 온정적 성차별. 적대적 성차별만큼 드러내 놓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하지 않음. 겉으로 보기에는 칭찬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남성의 우월함’이라는 감정에 뿌리를 둔 말과 행동들. 예를 들면 여자는 남자에게 보호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거나 – 배가 침몰한다면 여자가 먼저 구조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여자가 남자보다 선천적으로 더 육아를 잘 한다는 –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 생각과 말과 행동.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제한하며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Internalized sexism: 내제화된 성차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 그 사람의 세계관과 자기 개념의 일부가 된 상태. (한국 온오프라인 사회에서 흔히 개념녀, 코르셋녀 로 불림)

Misogynoir: 흑인여성혐오. (흑인 여성이 겪는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이 겹쳐진 상태)

LGBTQ: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소수성애자(Queer)의 줄임말. Q를 소수성애자가 아닌 퀘스쳐닝(Questioning, 아직 자신에게 질문하는 상태)를 사용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성을 아직 파악중인 사람을 칭하기도 한다. LGBTQIA 라는 비슷한 줄임말도 존재한다. 여기서 I 는 간성(Intersex) 을, A 는 무성애자(Asexual, Aromantic, Agender) 를 뜻하거나 종종  무성애자 대신동지(Allies, 성소수자들를 돕겠다는 사람) 가 들어가기도 한다.

Cisgender: 시스젠더. 생물학적 성별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Transgender: 트랜스젠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그 성별에 대한 성적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

Transphobia: 트랜스포비아.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트랜스젠더 혐오)

Transmisogyny: 트랜스여성혐오. 트랜스포비아와 여성혐오가 혼합된 형태. 트랜스여성과 트랜스젠더, 그리고 젠더 스펙트럼 (Gender spectrum, 직역: 성별 범위) 중 여성성에 가깝다고 정체화하는 젠더 비순응자를  차별하는 양상.

TERF: 트랜스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Trans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의 줄임말. ‘털프’ 라고 읽는다. 트랜스포비아를 가진 페미니스트를 지칭한다.

SWERF: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Sex Worker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의 줄임말. 성매매가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지칭한다.

Gender fluidity: 한 개의 고정된 성별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하지 않는 것.

Non-binary: 여성/남성 혹은 여자/남자라고 정체화 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

Women of color: 유색인종 여성. 백인 여성이 아닌 여성.

Title IX: 타이틀 나인. 미국 연방 연조를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사람들이 성차별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미국 교육조정법.

Victim-blaming: 피해자 비난, 혹은 책임전가. 범죄 혹은 혐오행동 피해자가 해당 범죄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과 말과 행동.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피해자가 무엇을 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런 말과 행동이 바로 피해자 비난이며, 다른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남자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물으면 안됀다고 학대와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한다.

Trigger: ‘트리거’. 트라우마를 연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떤 것. (“trauma trigger”, ‘트라우마 트리거’ 라는 심리학적 개념에서 유래한 용어)

Trigger warning: ‘트리거 워닝’. (‘연상반응 주의’ 로도 번역되어 알려짐) 폭력, 인종차별, 노골적 성행위 묘사 등의 요소로 인해 누군가에게 충격적일 수도 있다고 알리는 경고 문구.  대학에서 이 경고 문구를 사용하는 관습은 아직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주제이다.

Yes means yes: “No Means No” 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섹스는 분명하게 파트너의 동의를 받고 해야 한다는 생각. 즉, 강간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의 전환. (“No means No” 의 직역: ‘”No” 는 “No” 라는 뜻이야.’ 섹스는 파트너가 하기 싫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만해야 한다는 뜻으로, 섹스는 동의를 얻은 후 해야 한다는 캠페인의 캐취프레이즈. 하지만 이제는 파트너가 “Yes” 라고  명확히 말해야 동의를 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

Male gaze: 남성의 시선. 남성적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을 대상화 하는 행동.

Privilege: 특권. 사회 구성인 중 몇몇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Sex positive: 섹스 긍정주의. 파트너의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건강한 성적 표현과 성적 쾌락은 좋은 것이라고 보는 태도.

 

~(영어권) 인터넷 파생~

Bropropriating: ‘브로프로프리에팅’. 여성이 낸 아이디어를 남성이 무단 도용하는 행동. (예: 여성 동료가 제안했던 솔루션을 회의에 들어가서 마치 자신이 생각해 왔다는 듯 남성동료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말할 때.)

Manterrupting: ‘맨터럽팅’ (혹은 맨터럽트). 여성이 말하고 있는데 남성이 지나치게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행동. 예: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을 발표하려고 하는데 칸예 웨스트가 끼어들어 마이크를 빼앗고 “곧 돌려줄께. 하지만 비욘세가 이번에 낸 뮤직 비디오가 역사상 최고야.” 라고 말했던 상황. 또는 2016년 9월 미국 대선토론 중 도널드 트럼프가 첫 26분간 무려 22번이나 힐러리 클린턴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던 상황.  또는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미망인 코레타 킹의 1986년발 편지를 낭독하려하자 연방상원 공화당 대표 미치 맥코넬이 워런 의원을 저지했으나 그 다음날 버니 샌더스의 낭독은 허락한 상황.

Mansplain (verb) mansplainy (adjective): ‘맨스플레인’ (동사), ‘맨스플레이니’ (형용사). 남성이 1)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혹은 2) 상대방보다 더 많이 모르는 상태에서도 잘난 체 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여성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상황. 아, 이미 알고 있었다면 미안.

Manspreading: ‘맨스프레딩’. (쩍벌남) 다리를 넓게 벌려서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행동.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공단은 일명 ‘쩍벌남 근절’ 캠페인을 실행하기도 했다.

Feminazi: ‘페미나치’.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용어.
Woke: ‘우크’. (깨어있다) 흑인 사회운동 문화에 뿌리를 둔 단어. ‘우크’ 한 사람은 특히 사회적 불평등에 관련해서 교육을 받았으며 / 공부를 했으며 의식이 높다는 뜻이다.  하원의원 맥신 워터스(캘리포니아)는 젊은이들에게 “깨어있으라” 라고 말했다. 만약 여성인권의 맥락에서 이 단어를 찾아본다면 경찰폭력에 희생된 흑인여성을 위한 #SayHerName  (그녀의 이름을 불러라) 캠페인을 추천한다.

Woke misogynist: ‘우크 미소지니스트’ (‘여성혐오하는 깬시민’과 비슷한 뉘앙스) 노나 윌리스 아로노위츠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겉으로는 성평등을 외치면서도 뒤돌아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깔보고 억압하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의 남자들을 그려낸다. (해당 기고문) 이런 형식의 여성혐오는 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존재한다. 즉, 페미니스트인 척 하는 사람들.

Emosogynist: ‘이모(emo) 여성혐오자’. 유명 블로그 제제벨(Jezebel) 이 정의내린 바에 따르면 2004년 개봉 영화 ‘가든 스테이트’ 에 등장하는 재크 브레프가 딱 들어맞는다. 감성적이고, 앵스트가 가득하고 페미니스처럼 보이지만 진짜로 뭔하는건 자신들이 맘대로 가지고 놀다 버릴 수 있는 매닉 픽시 드림 걸* 이다.
*매닉 픽시 드림 걸 (Manic Pixie Dream Girl)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타입 중 하나로 발랄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소위 4차원같은 엉뚱한, 늘 밝기만한 단편적 여성 캐릭터를 지칭하는 명칭. 예를 들면 2009년 개봉 영화 ‘500일의 썸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썸머.

Whimpster: ‘윔스터’. (불평불만이 많은 힙스터) 1989년 개봉 영화 ‘금지된 사랑’의 로이드 도블러. 불평불만이 많은 이모(emo) 백인 남성. 자신의 불안함을 이용해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노린다.

~페미니즘 종류~

Intersectional feminism: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와 양성간의 평등을 지지하는 운동이라면,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는 인종,  사회 계급,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 폭 넓고 다양하며 서로 겹치는 정체성이 있음을 이해하며, 그런 상호교차적인 정체성이 개개인이 경험하는 억압과 차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다.

Transfeminism: 트랜스 페미니즘. “자신들의 해방이 모든 여성과 그를 초월하는 모두의 해방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트랜스여성에 의한, 트랜스여성을 위한 운동” 이다. 생물학적 성별과 무관하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여성을 포함하며 시스젠더의 특권에 이이를 제기하는 페미니즘의 갈래.

Women of color feminism: 유색인종 여성이 직면하는 고유의 투쟁을 직시하고 싸우는 페미니즘의 갈래.  상호교차적인 억압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Womanism: 우머니즘.  아프리카 여성의 문화 및 전 세계의 유색인종 여성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관점 변화.

Empowerment feminism: 권한부여 (‘임파워먼트’ 라고도 번역되어 알려짐) 페미니즘. 클럽에서 비욘세의 노래 ‘포메이션’이 나와서 친구들과 정말 재밌게 춤추며 노는 것. 권한부여 페미니즘은 “느낌” 에 강한 중점을 둔다. 몇몇 페미니스트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 사회가 개인의 얼마나 자신표현과 발전을 실질적으로 지지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셰릴 샌드버그의 자서전 ‘린 인’ 또한 권한부여 페미니즘의 또 다른 예시이다. 셰릴 샌드버그는 ‘린 인’에서 여성이 직장에서 어떤 변화를 줘서 더 성공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Commodity feminism: 상품 페미니즘.  상업적 이익을 위해 페미니즘 운동의 이상을 상품과 결합하는 페미니즘의 갈래. 이방카 트럼프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WomenWhoWork (일하는 여성들) 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Equity feminism (conservative feminism): ‘에쿼티 페미니즘’, 보수적 페미니즘. (직역: 공평 페미니즘) 보수 성향단체인 AEI 의 상주학자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가 에쿼티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라고 말할 수 있다. 서머스의 관점에 따르면 “에쿼티 페미니즘” 은 남성과 여성간 법적 평등에 집중하지만 “젠더 페미니즘”은 여성을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늘 규정하기 때문에 여성의 권한을 뺏어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 고문 켈리앤 콘웨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내 자신을 날 둘러싼 환경의 피해자가 아닌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로 본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보수적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물결~

*몇몇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물결”이라는 단어가 페미니즘이 항상 불평등을 싸우고 있지는 않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물결”의 사용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물결”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본다면 크게 다음과 같은 사건을 명시하는 것이다.

First wave feminism: 페미니즘의 첫 물결. 1848년 “여성의 사회적, 시민적, 종교적 환경” 을 논의한 세네카폴스 회의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1920년 미국 헌법 19번이 수정되며 여성참정권을 획득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몇몇 주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유색인종 여성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Second wave feminism: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 1960년대 시작해 1970년대 평등을 더 크게 요구하며 만개했다. 글로리아 스테넘 (Gloria Steinem), 도로시 핏맨 휴즈 (Dorothy Pitman Hughes), 베티 프리단 (Betty Friedan) 등이 대표적인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다. 매우 큰 법적 및 구조적인 평등을 이룩해낸 시절.

Third-wave feminism: 1990년대 시작. 페미니즘을 더욱 더 포용적이고 상호교차적으로 발전하고, 또한 모든 여성이 각자 자신만의 ‘페미니즘’ 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도록 노력 중.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도 빼 놓을 수 없는 이 시대의 멋진 페미니스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