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칼럼 – 남자들에게, 당신도 포함해서.

원제: Dear Men: It’s You, Too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9일

*이 칼럼을 쓴 록산 게이는 퍼듀 대학교의 부교수이자 “나쁜 페미니스트”, “배고픔” 등 다수의 저서 작가

성폭력 관련 통계는 언제 들어도 소름끼치지만 그런 설명마저도 여성이 대면해야 하는 성폭력/성폭행의 진정한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 페미니즘 담론에서 우리는 ‘강간 문화’ 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이런 담론을 나눠야 하는 사람들, 즉 문제의 원인이 되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위해 변명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여자들은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는 그 개념조차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여자들이 히스테리 부리는 거야, 또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네.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어? 여자가 옷을 더 제대로 입고 다녔어야지, 행동을 똑바로 했어야지. 그걸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해?

회의론자들은 모든 말과 상황과 팩트를 어떻게 해서든지 비틀어서 여자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와중에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남자 – 유명하지만 사무치게 평범한 그런 남자들 –  가 성범죄자로 밝혀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나 다 공공연하게 알고 있던 그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고 국제적인 뉴스가 된다. 징그럽고 웃기지도 않은 범죄의 디테일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그 누가 다시는 목용용 가운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자신들이 경험했던 성폭력과 성추행을 알리고 있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이 순간 이 상황이 ‘이것이 나의 짐이고, 이것이 여성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다’ 라는 우리의 증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쳤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이제는 남자들의 차례다.

나는 성폭행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레벨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성폭력에 대해 몇 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말해왔고, 집필해 왔고, 트위터에서 활동해 왔다.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머리 끝까지 침식되어 있지만 이렇게 해야만 언젠가는 ‘강간 문화’ 라는 문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구식 개념이라고 우리 언어에서 추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해 왔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더 밝은 미래를 향해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특히나 악의는 없는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강간 문화를 수용할 때 더 멀어진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 중 나쁜 남자는 일부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남자가 없을꺼라고 믿고 싶어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로 그런 나쁜 남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추행은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실리콘 밸리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믿고 싶어한다. 성추행은 모든 산업, 모든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의 부적절한 의도와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좀 더 상냥하게 말했다거나, 술을 덜 마셨거나, 옷을 더 얌전하게 입었거나 웃어줬다거나 감사의 뜻을 표하거나 등등 여자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성폭력과 성추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남자라서 어쩔 수 없고, 남자들은 살살 구슬려야 하고, 성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이 더 제대로 행동했다면 이런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도 주장한다. 만약 여자가 옷을 더 얌전한 스타일로 입는다면 개성있는 외모를 감사하게 생각했다면, 혹은 도나 카란의 말을 빌리자면, “관능적이고 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이러한 배신 하나하나가 쌓일 때마다 여성 전체가 짊어진 짐은 더 무거워진다.

성폭력과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매번 반복되는 이러한 답변과 논리는 어떤 여성도 원치 않는 남성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를 마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든지 안 맞든지, 긴 옷을 입든지 짧은 옷을 입든지 원치 않는 관심을 받지 않는 일은 없다. 운이 좋은 여성들이 그 관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뿐이다.

성폭행은 언제나 ‘권력’ 이 그 중점이다. 물론 성적인 요소도 있지만, 성폭력은 누군가가 자신이 우위을 선점하고 있으며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잊는다면 보편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성폭행을 경험한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을 무시하고, 목소리를 빼앗고 그들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성폭행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라며 축소시키는 여성들이 있다. 그냥 길을 걷다가 좀 야유를 당한거야. 그냥 어떤 남자가 좀 만졌을 뿐이야, 벽으로 밀치고 자기 몸으로 눌렀을 뿐이야. 그냥 강간 당했을 뿐이야. 무기도 하나도 없는 맨 손이었어. 10 블락 정도 따라오더니 그냥 돌아가던걸. 멍도 몇 개 안 들었어.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어. 내가 이 나라에서 당하는 그 어떤 일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나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 우리는 마치 후크송의 후렴부 같이 이런 말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들려준다. 왜냐하면 이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정말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단 1초도 더 이 짐을 짊어지고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일어난 후, 추잡한 개인 메세지를 보낸 이부터 강간까지 다양한 성폭행을 저지른 미디어 쪽 남자들의 목록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록은 나타났던 것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 목록을 봤다. 그 중 몇몇은 성적인 폭행을 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록에 올라오면 안 될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몇몇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사회적인 망신도 당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 목록은 미디아의 영향력이 약한 인디아나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도 이미 알려져 있는 악행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쁜 남자들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은 정말 많다.

그 목록 퍼져나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명예회손이니 익명 고발의 도덕성이니 하는 걱정들이 많았다. 이런 나쁜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입는 “착한 남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덧붙여 더 “약한” 성폭행이 더 질 나쁜 성폭행과 함께 있어서 나빠 보인다는 걱정도. 마치 여성들은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할 능력이 없으며 상황에 알맞은 태도인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감내해 온 고통보다 이 목록이 남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붇고 있었다. 사회는 자신들이 만나 온 나쁜 남자들을 걸러낼 수 있게 지금까지 입으로만 서로 정보를 교환하던 여자들이 이제 가시적인 목록을 만들자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와인스타인 스캔들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Metoo 해쉬태그를 보자.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을 공유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말한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해봤어, 나도, 나도. 미 투.  나도 참여할까 고려했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지쳤다. 나는 이미 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공격받고 상처를 받았다고, 내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데 지쳤다.  너무나 아파서 이제는 아픈 것이 아픈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들이 뭔지 알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공개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계속 공유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특히 남자들은 성폭력이 이렇게 만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반응한다. 이들은 모를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패닉해서 모든 남자들이 성 범죄자가 아니고 자신들은 그렇게 일반화 당하고 싶지 않으며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픈줄 안다고 말해댄다. 남자들은 너무 많은 남자들이 성범죄자이며 여자들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성폭행 목록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너무 당황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하며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라고 묻는 남자들이 존재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남자들도 여자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상처를 공유하며 해왔던 일을 함께 하면 된다. 남자들도 이제 앞으로 나서 “나도” 라고 말하며 여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일을 공유하면 된다. 남자들은 이제 좁은 사무실 복도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여자들을 코너로 몰아넣었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 어떤 외설적인 말을 했는지, 여자들이 싫다고 거절했을 때 그 대답을 듣지 않고 죄책감을 가지게 해서 결국 섹스를 강요했는지 등을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성폭력을 행사할 때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 모른 척 방관했는지,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웃어 넘겼는지 아니면 몰래 속으로 그 여자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는지 – 말하면 된다. 이젠 남자들이 해답을 찾을 차례이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지 않은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에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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