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레나 던햄 칼럼 – 하비 와인스테인과 남성들의 침묵

원제: Lena Dunham: Harvey Weinstein and the Silence of the Men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9일

 

나는 23살에 할리우드로 갔다. 저예산 영화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에이전트를 구하고, TV 계약을 따냈다. 모두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을 동화 같은 성공이었고, 23살의 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저런 미팅을,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처럼 기뻐하며 돌아다녔다.

이런 미팅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과 이루어졌고 일상적인 성차별 행위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소규모의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할 거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여성들의 생리 주기가 겹쳐 한 주간 미쳐 돌아가는” 코미디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하고, 내가 “섹시한 여자랑 짝을 이루면 진짜 재밌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지나치게 길어졌고, 업무상 점심 자리가 영화사 임원의 파탄난 결혼을 고백하는 자리로 바뀌는가 하면, 내가 내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침대에서 뭐든 해주는” 여자가 아니냐고 계속 우기기도 했다.

나는 이를 견디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 새로 만든 친구이자 지금은 업무상 파트너가 된 제니 코너네 집 쇼파에 앉아 그 날 겪은 불합리함을 털어 놓곤 했다. 코너는 나에게 자신이 사다리를 오르며 겪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우리는 우리끼리 새로운 세상을 계획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세트장, 나대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임금을 낮춰 주는 건 꿈도 못꾸는 남성들, 보이는 곳 끝까지 여성들이 가득찬 회사,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대본을 쓸 기회를 꿈꿨다. 그걸 섹스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남자들에게는 가서 신발이나 쳐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남성들은 (예를 들어 주드 애파토우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덜 더러운 남성이다) 우리를 전적으로 존중했다. 내가 감독에 관해 끔찍하게 분노했던 건 어떤 게이 남성이 나한테 사준 지갑을 다시 가져가라고 했을 때뿐이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지난 한주간 하비 와인스테인이 수년간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여러 보도를 통해 할리우드의 모든 여성이 우리와 같은 길을 겪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게 분명히 밝혀졌다. 사업이나 예술을 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학대와 위협, 강요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와인스테인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질 남성들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일 지는 모르지만, 와인스테인 외에도 처벌을 받지 않고 날뛰던 가해자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십년간 그의 회사에 근무하거나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행동을 용인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시초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축소판이며, 전지구상의 여성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소유하고 침묵시키는 일은 영화 세트장만큼이나 페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일어나고, 할리우드는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용납하면 안되는지 시끄럽게 선언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좌파 쪽으로 기우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로저 에일스 (성희롱 혐의로 고발 당한 보수 매체 폭스 뉴스 창립자), 빌 오레일리(성추행 혐의가 불거져 퇴사한 폭스 뉴스 전 간판 앵커)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주저 없이 비난해왔다. 우리는 성폭력이 “락커룸 대화”일 뿐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어디도 아닌 할리우드의 인물이 여성을 모욕하고 정신적 충격을 입히는 끔찍한 취향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은, 특히 남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단 말인가?

이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아직도 가장 핫한 젊은 스타들과 작업하고 있다. 그는 부정했지만 앨런의 딸은 어릴 때 앨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는 적극 구명해야 할 선구적인 인물로 비춰지며, 최근 한 남성 스타는 나에게 폴란스키와의 작업은 “궁극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기소를 중지하고 미국 복귀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촉구하는 할리우드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도 와인스테인이었다.)

이런 거물들을 제쳐놓고도 할리우드의 남성들은 아직도 나쁜 행동을 무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여러 피해자로부터 직접 디스토피아 그 자체로 보이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나는 작년 내가 출연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감독에게 세트장이 아닌 곳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높은 자들의 반응은 감독을 옹호하고, 여성을 집요하게 취조하고, 그를 해고하기 전까지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 거였다.  감독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고대의 우정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 이런 권력 남용의 ‘정상화(normalization)’는 바로 그런 식의 행동에 기반을 둔다.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데다 의심의 여지 없이 끔찍한 와인스테인의 혐의는 논박도 무시도 불가해보인다. 나는 순진하게도 여태까지 할리우드의 영향력 큰 남자들이 보여온 침묵, 진실공방 속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집단적인 선택은 와인스테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무너져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내가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남성들은 잃을 것이 적고, 서사를 뒤집을 만한 힘이 많은 데다 이런 혐의를 둘러싼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일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와인스테인과 작업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있다. 와인스테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선물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영화 산업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기횐데도 말이다. 여성들에겐 우리가 이런 권력 남용은 물론 이런 행동의 원동력인 여성 혐오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2016년 가을, 나는 와인스테인컴퍼니에서 주최한 힐러리 클린턴 자선 행사에서 공연했다. 루머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의 후원 하에 공연을 하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너무나 돕고 싶다는 계산 끝에 참여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저런 계산을 했고, 그런 계산에 대해 사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 그리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는 데 꼭 필요한 입장 변화다. 나는 우리 산업의 여성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누군가와 악수를 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뭐가 미안한가? 더 이상은 어떤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가? 공백을 메우고 기준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당신은 무엇이 두려운가? 소문을 듣고서도 맡았던 어떤 역할이나 위원회 자리인가? 샴페인 한 잔? 등을 두드렸던 것? 와인스테인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찍혀서, 아니면 당신의 단체에 와인스테인이 기부를 해서, 혹은 당신에게 여자친구를 소개 시켜주거나 오스카 상을 받도록 도와줘서 부끄러운가? 혹시 정말 슬픈 일이지만 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 하에 살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성폭력 가해자라는 걸 알면서도 고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고객들을 그런 감독들의 세트장으로 밀어넣는 에이전시의 문제다. 달갑지 않은 문제를 묵과한 제작자들의 문제이며, 떠도는 소문을 들었지만 <판타지 풋볼>을 하러 자기 트레일러로 돌아갔던 배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비 와인스테인의 축복을 받는 위치를 잃을까봐 알아낸 정보를 보도하지 않았던 영화 산업 언론의 문제다. 일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얘기를 드러내기 두려워했던 여성들, 와인스테인에게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던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침묵, 특히나 와인스테인과 가깝게 지냈던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이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 문화를 공고히 할 뿐이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리 없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을 묵과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를 여기로 이끈 바로 그 길에 남게 된다. 소음을 일으키는 게 곧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게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다. 우리는 더 이상은 이런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더 크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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