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칼럼 – 하비 와인스타인은 갔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문제는 남았다.

원제: Harvey Weinstein Is Gone. But Hollywood Still Has a Problem.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11일

*이 칼럼을 쓴 마놀라 다기스는 1987년부터 영화 평론을 시작했으며 현 뉴욕 타임즈 영화평론 공동 국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여성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가 부상하는 것을 읽고 내게 든 생각은 ‘뭐, 당연한 일이군’이었다. 와인스타인은 우쭐대는 골목대장 스타일로 유명하고, 와인스타인 밑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특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들은 바는 없지만 이런 행동은 영화산업에 널리 퍼진 끈질긴 여성 착취에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이후 10일 뉴욕타임즈는 이탈리아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아시아 아젠토를 포함해 3명의 여성들이 와인스타인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말하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즈의 와인스타인 탐사보도를 본 후엔 더 없는 혐오감이 들었지만, 뉴요커의 기사를 읽곤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여성들이 경험한 성폭력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때로는 추악했고 때로는 황당했던 나의 여러 경험도 떠올랐다. 뉴욕에서 어떤 감독을 인터뷰하던 중 그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확 기대오기 시작한  때도 있다. 나는 몸을 빼낸 후 침착하게 말을 계속해나갔다. 그때 나는 그 감독을 보편적인 남성 성차별주의자로만 생각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특유의 행동이라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냥 자기 권력을 여성에게 휘두르려는 또 다른 남자구나 싶었다. 이건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감돌고 있는 것은 뒤틀리고, 끈질기며, 당연하다는 듯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형 성적 착취와 폭력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의 보편성은 미국 영화 산업 전반에도 만연하다. 영화 산업을 쌓는 데는 여성의 도움이 들어갔으나 할리우드는 언제나 구조적으로 여성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남성 중심적 산업이었다. 할리우드는 역사적으로 어린 여성 예술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유통기한을 메겨왔다. 여성 감독 기용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오만하게도 여성 관객을 틈새 시장, 골칫거리,  나중에 가서 대충 맞춰주면 되는 상대로 취급해온 산업이기도 하다.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와인스타인에게 입은 피해를 고백하고 나선 건 너무나 고무적이다. 그러나 와인스타인은 이례적인 인물이 아니다. 와인스타인은  구조적 성차별의 일반적이고 악독한 증상일 뿐이다.  그를 용인해와놓고도 지금 와선 어깨를 으쓱하며 이 사건을 넘겨버리고 괜히 여성들에게 더 먼저 말하지 그랬냐고 묻는 모든 이들도 구조적 성차별의 증상임은 마찬가지다.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건 여타 산업이건 존재하는 다른 가해자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가 한때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고 피해자 중에 여러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포로 움직이는 산업, 침묵이 방패이자 무기이고 일을 얻는 조건인 할리우드를 일깨우는 강력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할리우드의 침묵은 역사적으로 영화 만드는 남자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남자들 중에는 루이스 B. 메이어 같은 이전 세대의 스튜디오 수장들이 있다. 와인스타인은 종종 추억 어린 눈길로 이런 거물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과거에 스튜디오 수장들은 우아하게도 ‘호색한(womanizer)’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런 예의 바른 비유법 속에는 ‘캐스팅 쇼파에서 보내는 시간’-역겨운 완곡어법을 하나 더 들자면-에서부터 성매매나 다를 바 없는 행위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어의 이름을 땄고 하늘보다 더 많은 ‘스타’를 자랑했던 제작사 메트로-골드윈-메이어는 “여러 임원 사무실 내에서 돌리는 용도인 ‘6개월 옵션녀’라고 알려진 여성들”이 있었다고 역사학자 스콧 아이먼은 말한다.

이런 일들이 뭐랄까, 평범하게 느껴진다면,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리 저리 돌리는 천박한 일면은 할리우드의 역사, 전통, 그리고 정체성 그 자체에 깊숙히 엮여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할리우드에 와서 스크린테스트를 받고 잘하면 계약을 하게 된다. 그 뒤에 나오는 얘기는 지겨울 정도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생생하다. 회사는 머리를 금색으로 염색시키고, 약을 먹이고, 다이어트를 시키고, 몸에 칼을 대게 한다. 운이 좋으면 마릴린 먼로(또는 그 시대의 ‘잇걸’)이 되고, 운이 더 좋으면 살아서 할리우드를 빠져나간다. 다른 이들은 이리 저리 돌려지는 여자로 남는다. 옛 시대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성 착취가 영화 산업의 일부가 되려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태도-야, 여기 할리우드야-는 살아남았다.

와인스타인의 커리어에는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이 있다. 1980년대 인디영화 판에서 부상하던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초기 회사 미라맥스를 골리앗 같은 주류 미디어 그룹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이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같은 미디어 공룡 기업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단조롭게 주판알을 튕기던 미디어 기업의 시대에 미라맥스는 활력과 신비한 분위기가 넘쳤다. 무엇보다도 미라맥스는 일약 스타덤에 오를만한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성 배우들과 락스타 같은 남성 영화 감독(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와인스타인이 가끔 가다 누군가에게 (말 그대로) 펀치를 날리기는 했지만 할리우드에서의 실수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박스오피스의 성공과 매끈한 PR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 잡지 프리미어의 에디터였던 피터 비스킨드는 1991년에 와인스타인을 파헤치려 했지만 미라맥스가 광고를 빼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 다음에 알게된 사실은 와인스타인이 프리미어에 컬럼을 쓰게 됐고, 내가 와인스타인의 에디터가 됐다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언론의 약점을 꽉 틀어쥘 수 있었던 이유는 쌍방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와인스타인은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을 돕는 여성들을 도왔다. 2007년 와인스타인은 시민단체 ‘영화 속 여성(Women in Film)’이 주최하는 크리스탈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해 미라맥스 영화 <시카고> 등에 출연한 르네 젤위거에게 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와인스타인에 대해 밝혀진 사실들을 볼 때 와인스타인의 회사들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제인 캠피온 감독(<피아노>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주디 덴치(<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은 중년 여배우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건 진보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머리를 잘 굴려 옛 시대 스튜디오 스타일의 상품 다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보자면 와인스타인과 그 동생 밥 와인스타인이 여성에게 기회를 줬던 건 여러 종류의 영화를 개봉했고 또 모든 자원을 성공공식을 따르는 영화(그리고 남성 중심적 슈퍼 히어로 영화)에만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HBO 시리즈 <걸즈>의 공동제작자인 제니 코너는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나중에 돌아보면서 ‘그때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지’라고 회상할 순간”이라며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너의 말이 맞기를 바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멜 깁슨의 사례에서 보듯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자들을 너무나 잘 용서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땅바닥에 엎어진 동료에게 눈길을 주긴 하지만 다음 미팅에 가는 길에 밟고 지나가려는 목적일 뿐이다. 그리고 그 동료가 어떻게든 다시 재기한다고 할 때 할리우드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냐고 물을 것이다. 이런 용서는 종종 사업에 중요한 것은 돈뿐이라는 익숙한 대사와 연결된다.

돈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영화 산업의 가장 역겨운 행태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여자, 흑인, 기타 등등을 쓰지 않는 이유는 돈이 안되서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은 할리우드를 좌파라고 보고 내부인들은 진보적 대의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영화 산업은 근본적 보수주의 원칙을 따른다. 이 보수주의가 서사 재활용, 여성(그리고 남성)의 성 착취, 남성 중심적‧백인 중심적 체제 유지를 조형한다. 에이바 듀버네이와 레나 던햄(던햄의 와인스타인 사건 관련 칼럼 전문 번역을 보시려면 여기로)와 같은 혁신적 인물들의 압력에도 영화 산업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내려놓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의 혐의 부상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기점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영화 산업을 바꾸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번 사건은 그 압력의 일부다. 할리우드 내외의 운동가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할리우드의 편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기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영화 내 다양성과 관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LA타임즈에 따르면 시민단체 미국시민권연합(ACLU)의 촉구로 미국 연방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2015년부터 TV 및 영화의 여성 감독에게 접촉해 고충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성차별과 매일 싸워야만 하는 할리우드의 여성들을 위해 실질적인 변화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내가 변화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는 둔탁하고 유해한 고정관념(streotype)과 서사적 클리셰와는 다른 새로운 목소리와 비전이 영화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애호가를 위해서도 변화는 필요하다. 나는 내 일생 동안 영화에 대한 모순적인 사랑 속을 헤맸다. 영화 속에서나 그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너무나 자주 영화에 드러났고, 나는 영화의 여성혐오와 영화가 주는 기쁨 간에 갈등했다. 영화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기만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분노할 때이기도 하다.

[NYT] 레나 던햄 칼럼 – 하비 와인스테인과 남성들의 침묵

원제: Lena Dunham: Harvey Weinstein and the Silence of the Men (NYT)

원게시일: 2017년 10월 9일

 

나는 23살에 할리우드로 갔다. 저예산 영화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에이전트를 구하고, TV 계약을 따냈다. 모두 6개월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을 동화 같은 성공이었고, 23살의 나이에도 그게 얼마나 훌륭한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저런 미팅을,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처럼 기뻐하며 돌아다녔다.

이런 미팅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과 이루어졌고 일상적인 성차별 행위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소규모의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할 거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여성들의 생리 주기가 겹쳐 한 주간 미쳐 돌아가는” 코미디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하고, 내가 “섹시한 여자랑 짝을 이루면 진짜 재밌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지나치게 길어졌고, 업무상 점심 자리가 영화사 임원의 파탄난 결혼을 고백하는 자리로 바뀌는가 하면, 내가 내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침대에서 뭐든 해주는” 여자가 아니냐고 계속 우기기도 했다.

나는 이를 견디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 새로 만든 친구이자 지금은 업무상 파트너가 된 제니 코너네 집 쇼파에 앉아 그 날 겪은 불합리함을 털어 놓곤 했다. 코너는 나에게 자신이 사다리를 오르며 겪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우리는 우리끼리 새로운 세상을 계획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세트장, 나대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임금을 낮춰 주는 건 꿈도 못꾸는 남성들, 보이는 곳 끝까지 여성들이 가득찬 회사,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대본을 쓸 기회를 꿈꿨다. 그걸 섹스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남자들에게는 가서 신발이나 쳐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남성들은 (예를 들어 주드 애파토우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덜 더러운 남성이다) 우리를 전적으로 존중했다. 내가 감독에 관해 끔찍하게 분노했던 건 어떤 게이 남성이 나한테 사준 지갑을 다시 가져가라고 했을 때뿐이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지난 한주간 하비 와인스테인이 수년간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여러 보도를 통해 할리우드의 모든 여성이 우리와 같은 길을 겪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게 분명히 밝혀졌다. 사업이나 예술을 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학대와 위협, 강요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와인스테인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질 남성들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일 지는 모르지만, 와인스테인 외에도 처벌을 받지 않고 날뛰던 가해자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십년간 그의 회사에 근무하거나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의 행동을 용인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시초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축소판이며, 전지구상의 여성들이 겪는 직장 내 성폭력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소유하고 침묵시키는 일은 영화 세트장만큼이나 페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일어나고, 할리우드는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용납하면 안되는지 시끄럽게 선언할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좌파 쪽으로 기우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로저 에일스 (성희롱 혐의로 고발 당한 보수 매체 폭스 뉴스 창립자), 빌 오레일리(성추행 혐의가 불거져 퇴사한 폭스 뉴스 전 간판 앵커)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주저 없이 비난해왔다. 우리는 성폭력이 “락커룸 대화”일 뿐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어디도 아닌 할리우드의 인물이 여성을 모욕하고 정신적 충격을 입히는 끔찍한 취향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진 상황에서, 영화 산업은, 특히 남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단 말인가?

이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디 앨런은 아직도 가장 핫한 젊은 스타들과 작업하고 있다. 그는 부정했지만 앨런의 딸은 어릴 때 앨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는 적극 구명해야 할 선구적인 인물로 비춰지며, 최근 한 남성 스타는 나에게 폴란스키와의 작업은 “궁극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기소를 중지하고 미국 복귀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촉구하는 할리우드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도 와인스테인이었다.)

이런 거물들을 제쳐놓고도 할리우드의 남성들은 아직도 나쁜 행동을 무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여러 피해자로부터 직접 디스토피아 그 자체로 보이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나는 작년 내가 출연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감독에게 세트장이 아닌 곳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높은 자들의 반응은 감독을 옹호하고, 여성을 집요하게 취조하고, 그를 해고하기 전까지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 거였다.  감독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고대의 우정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 이런 권력 남용의 ‘정상화(normalization)’는 바로 그런 식의 행동에 기반을 둔다.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데다 의심의 여지 없이 끔찍한 와인스테인의 혐의는 논박도 무시도 불가해보인다. 나는 순진하게도 여태까지 할리우드의 영향력 큰 남자들이 보여온 침묵, 진실공방 속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집단적인 선택은 와인스테인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무너져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내가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남성들은 잃을 것이 적고, 서사를 뒤집을 만한 힘이 많은 데다 이런 혐의를 둘러싼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일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와인스테인과 작업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있다. 와인스테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선물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영화 산업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기횐데도 말이다. 여성들에겐 우리가 이런 권력 남용은 물론 이런 행동의 원동력인 여성 혐오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2016년 가을, 나는 와인스테인컴퍼니에서 주최한 힐러리 클린턴 자선 행사에서 공연했다. 루머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의 후원 하에 공연을 하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너무나 돕고 싶다는 계산 끝에 참여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저런 계산을 했고, 그런 계산에 대해 사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업을 하는 방식, 그리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는 데 꼭 필요한 입장 변화다. 나는 우리 산업의 여성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누군가와 악수를 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뭐가 미안한가? 더 이상은 어떤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가? 공백을 메우고 기준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당신은 무엇이 두려운가? 소문을 듣고서도 맡았던 어떤 역할이나 위원회 자리인가? 샴페인 한 잔? 등을 두드렸던 것? 와인스테인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찍혀서, 아니면 당신의 단체에 와인스테인이 기부를 해서, 혹은 당신에게 여자친구를 소개 시켜주거나 오스카 상을 받도록 도와줘서 부끄러운가? 혹시 정말 슬픈 일이지만 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 하에 살아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성폭력 가해자라는 걸 알면서도 고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고객들을 그런 감독들의 세트장으로 밀어넣는 에이전시의 문제다. 달갑지 않은 문제를 묵과한 제작자들의 문제이며, 떠도는 소문을 들었지만 <판타지 풋볼>을 하러 자기 트레일러로 돌아갔던 배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비 와인스테인의 축복을 받는 위치를 잃을까봐 알아낸 정보를 보도하지 않았던 영화 산업 언론의 문제다. 일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얘기를 드러내기 두려워했던 여성들, 와인스테인에게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던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침묵, 특히나 와인스테인과 가깝게 지냈던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이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 문화를 공고히 할 뿐이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리 없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을 묵과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할 때 우리는 우리를 여기로 이끈 바로 그 길에 남게 된다. 소음을 일으키는 게 곧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게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다. 우리는 더 이상은 이런 이야기만을 하고 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더 크게 말해라.